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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여러분 중에 요즘 기력이 없다고 느끼시는 분이 계신가요? 가족이나 친구들을 만나면 “계절을 타는지 영 기운이 없네”라는 말을 습관적으로 하시는 분도 계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80대 여성 A씨는 진료실에서 “교수님 요즘 통 기력이 없네요”라는 말을 반복했습니다.

고혈압 등 만성질환을 오래 앓아왔습니다만, 혈액-소변검사 등의 결과만 봐서는 건강에 심각한 이상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A씨는 입맛이 없어서 먹는 것이 시원치 않으며, 그 때문에 기력이 없어졌다고 스스로 굳게 믿고 있습니다.

‘기력이 없어서’ 병원을 찾은 환자로서는 의사가 ‘이상이 없다’라고 말하니 답답한 노릇입니다. 그런 환자를 바라보아야 하는 의사도 딱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요? A씨의 ‘기력 없음’에는 사실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혈액-소변검사는 물론 X선이나 초음파, CT나 MRI를 찍어도 확인되지 않습니다. 바로 ‘우울증’입니다.

현대 의학에서도 기력이라고 말할 때의 기(氣)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한 실험을 한 적도 있습니다.

일본 교토대 의대는 사람에게 ‘기’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최첨단 장비를 이용해 사진을 찍는 등 다양한 검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장비를 이용한 검사에서 기(氣)를 확인하지는 못했습니다.

기(氣)와 기력(氣力) 또는 기운(氣運)은 약간 다릅니다. 흔히 기력은 정신과 육체의 힘으로 정의됩니다.

몇 끼를 굶은 사람에게 미음과 소금을 주면 금방 체력을 회복합니다. 이는 육체적인 힘입니다. 옛날에는 ‘곡식의 기운’을 사람이 이용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만, 현대 의학에서는 혈당이 공급돼 몸의 근육과 장기들이 정상 작동한다고 해석합니다.

그런데 혈당이 정상 공급되는데도 기력이 없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력을 좌우하는 요소 중에서 정신적인 힘에 문제가 있을 때입니다.

그 대표적인 요인이 우울증, 심한 스트레스 등입니다.

우울증이나 심한 스트레스를 초래하는 요인은 매우 다양합니다만,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면 인간관계 갈등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50대 여성 B씨. 기운이 없어서 병원을 찾아 여러 검사를 받았지만, 원인을 찾지 못하고 10년 이상 고생했습니다. 그러다 시어머니가 별세한 뒤에 B씨의 기운 없는 증상은 눈 녹듯 사라졌습니다.

나중에 알려진 것입니다만, 시어머니가 생존해 있는 동안 고부갈등이 적지 않게 있었다고 합니다. 시어머니는 된장을 담그면 며느리에게 미리 알리지도 않고, 아들 집을 방문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시어머니로서는 아들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표시한 것이었으나, 그런 행동이 며느리에게는 심한 스트레스로 작용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고부갈등을 포함한 인간관계가 모든 사람에게 극심한 스트레스로 작용하거나, 우울증을 유발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정신적으로 심한 압박감을 줄 수 있으며, 이것이 기력이 없는 상태까지 유발할 수 있습니다. 종전에는 고부갈등이 인간관계 갈등의 큰 부분을 차지했으나 요즘은 배우자, 자녀 문제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건강의 정의를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완전한 상태’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육체적으로 특별한 이상이 없어도, 정신적 또는 사회적으로 ‘아픈 상태’라면 건강하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이는 어지간한 검사로는 확인이 어려우므로 의사들도 진료할 때 환자의 정신적, 사회적인 상태를 세심하게 살펴보아야 합니다.

환자들도 아무리 검사를 받아도 기력 없는 원인이 드러나지 않으면 정신적, 사회적인 문제는 없는지 스스로 살펴보시고 진료받을 때 의사에게 이야기하시면 기력 없는 원인을 찾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아두어야 합니다. 필요하면 정신과 의사의 치료도 받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