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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김성권 박사의 건강편지 - 246
작성일자 2021-09-14
치료는 언제, 어디서 시작되나?


여러분, 다음 질문에 답변해 보시기 바랍니다.

<다음 중 ‘치료의 시작’은 어디일까요?>

①병원 예약­접수 ②의사와 첫 대면 ③의사의 첫 진찰 ④처방 전 받아 약 복용

저의 모범답안은 ②번입니다.

사람들이 의료기관을 찾는 첫째 이유는 통증입니다. 제가 대학교수로 근무하던 2003년 서울대병원 입원 환자 기록 23만 건을 분석한 논문을 쓴 적이 있는데, 입원 원인 1위가 통증(13.9%)이었습니다.

몸이 아픈 사람은 의사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눈빛과 표정으로 많은 이야기를 합니다. “아파 죽겠다”는 듯이 엄살을 부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통증을 꾹 참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처럼 환자와 의사가 첫 대면하면서 환자가 눈빛과 몸짓 등으로 나타내는 메시지를 파악하는 데서 치료가 시작됩니다.

허리가 아파 치료 받으러 온 환자는 허리에 손을 짚고 걸으며, 의자에 앉을 때도 조심합니다. 이런 행동을 통해 알게 모르게 환자는 자신의 문제를 드러냅니다. 이를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이라고 합니다.

통증은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만으로도 어느 정도 진단이 가능합니다만, 만성질환은 좀 더 구체적인 대화를 통해 진단하고 치료합니다.

말을 통한 진단이란 뜻의 문진(問診)이란 용어도 있습니다만, 왜 말을 진단과 치료의 시작이라고 말씀드리는 것일까요?

당뇨병 환자의 당화혈색소(HbA1c) 검사 결과가 8%가 나왔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당화혈색소가 4~5.6%은 정상, 6.5% 이상은 당뇨병으로 진단하므로 8%면 혈당이 상당히 높은 상태입니다.

어떤 의사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면서 환자에게 “혈당관리가 안되고 있네요. 이렇게 가면 심각한 당뇨 합병증이 올 수 있어요”라고 말할 것입니다.

또다른 의사는 “지난번 검사 때 9%에서 8%로 내렸으니 그동안 체중감량과 꾸준한 운동 등이 결실로 나타나네요. 좀 더 더 노력하시면 좋아지실 겁니다”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같은 당화혈색소 수치 8%이지만 그 전에 9%에서 내려가는 도중인지, 아니면 7%에서 올라가는 도중인지를 고려해야 하는 등 의사가 환자에게 이야기해야 말은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달라집니다.

의사가 환자를 칭찬해야 할 때 나무라거나, 반대로 따끔하게 지적해야 할 때 흐지부지 넘어가면 환자의 기분은 상하지 않을 수도 있으나, 치료에는 마이너스가 됩니다.

환자의 스타일도 중요한 고려 요소입니다. 환자는 낙천적인 성격을 가진 경우가 있는가 하면 비관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들도 있습니다.

치료에서는 낙천적인 것이 반드시 유리하다거나 비관적인 성격이 불리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낙천적인 사람이 장수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된 적도 있습니다만, 너무 낙천적인 사람들 중에는 만성질환 합병증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잘못된 생활습관을 이어가는 사례도 있기 때문입니다.

지혈, 주사, 약 복용, 수술 등 눈에 띄는 것만을 치료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치료의 범위는 이보다 훨씬 더 넓고 복잡합니다.

그래서 의사가 환자의 말 한 마디에 귀를 기울이고 표정을 세심하게 읽는 것이 치료의 일부라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의료는 디지털화가 어렵습니다.

2~3년 전, 인공지능이나 빅데이터, 로봇 기술 등의 발달하면 얼마 안가 의사들이 실업자가 될 것이란 예측들이 언론에 보도된 적이 있습니다. 그 후 미국 IBM사의 의료분야 인공지능 ‘왓슨’을 미국 병원들은 물론 국내 일부 병원들이 도입해 암 진단 등에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딥 러닝을 통해 수 만 편 이상의 의학논문과 책을 학습해 ‘인간 의사’보다 뛰어난 의학 지식을 갖추었다고 하던 왓슨을 IBM사가 매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많은 의학논문을 읽어도 논문으로 표현할 수 없는 의료의 섬세하고 복잡한 부분에 대해서는 왓슨의 한계가 명확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데이터나 수치로 된 정보를 다루는 데는 탁월한 능력을 보이는 인공지능이나 로봇 등의 첨단기술도 데이터로 나타낼 수 없는 상황을 이해하는 데는 초보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환자의 눈빛과 표정까지 읽어내는 인공지능을 개발하려면 시간이 무척 오래 걸릴 것입니다.

의사들은 의학 교과서나 논문으로만 의료 지식을 터득하는 게 아닙니다. 의사는 스승, 선배, 동료 의사는 물론 환자들로부터도 많은 지식, 특히 비 언어적 소통을 습득하고 진료에 활용하기도 합니다.

숫자나 데이터로 표현할 수 없는 인간의 몸과 마음에 생기는 질병의 진단과 치료는 앞으로 꽤 오래 ‘인간 의사’의 몫으로 남을 전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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