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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김성권 박사의 건강편지 - 245
작성일자 2021-09-10
과학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면...


20세에 의대에 입학 이래 50여 년간 과학도(의학도)의 길을 걷는 동안 견고했던 과학에 대한 믿음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현상을 요즘 경험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COVID­19) 때문입니다.

의학도로서 과학(의학)이 우리가 당면하는 많은 문제의 최상의 해결책인 경우가 많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세상의 모든 문제를 과학이 해결하지는 못합니다. 과학이 생로병사의 일부는 해결할 수는 있더라도, 완벽한 해법을 못 내놓습니다. 그래서 과학의 시대에도 종교, 인문학, 예술 등은 고유한 역할을 합니다.

다만 과학이 발달할수록 미신, 맹신, 무지, 광기 등은 점점 더 발붙일 데가 없을 것이라는 점만은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특히 과학적으로 상세하게 규명돼 있는 세균이나 바이러스 전염병 문제의 경우에는 과학과 의학적 접근법이 최선의 해결책이 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과학만능론’을 따르지는 않지만, 전염병 문제처럼 과학이 효과적인 경우에는 과학이 최상책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이런 저의 생각은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라는 현실을 만나 상당 부분 빗나가고 있습니다.

코로나19의 대응 과정에서 사회 각 분야에서 각자의 이해타산에 급급한 결정들이 잇따랐고, 대중은 그들의 기준에 맞거나 그들이 원하는 허위정보에 부화뇌동하는 모습들을 보여주었습니다.

더욱이 현대 과학, 의학을 선도한다는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과학적, 비문명적, 비이성적인 현상들 앞에서 당혹감과 실망감은 더 커졌습니다. 이는 미국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미국의 과학과 기술, 의학과 생명공학 등에서 세계 최고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는 코로나19 백신 개발에서도 증명되었습니다. 개척자(first mover)로서의 미국은 추격자(fast follower)인 여타 국가들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점도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 대응에서 선진국답지 않은 모습들도 보여주고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저조한 백신 접종률입니다. 최초의 백신 개발국인 미국은 가장 먼저 백신 접종률 70%에 도달할 것으로 예측되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백신이 충분한데도 8월 말 1회 이상 총 접종률이 61%에 그치고 있습니다. 접종률이 높은 나라들과 비교하면 10~20% 포인트나 낮은 수치입니다. 특히 앨러배마, 미주리, 미시시피 등 미국 중부 일부 주들에서는 1회 이상 접종률이 40%대에 머물러 연방 정부가 골머리를 앓는다고 합니다.

미국 언론에도 ‘백신 거부자(anti­vaxxer)’라는 용어가 수시로 등장하는 등 백신 음모론이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입니다. 과학, 의학이 최고로 발달한 미국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이런 현상들을 보면 과학 발달과 인간의 과학적 인식, 실천은 전혀 별개라는 생각이 듭니다.

과학의 시대가 열리면서 오랫동안 인간을 지배해온 우상과 미신, 무지는 자연스럽게 소멸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요즘 발생하는 상황을 보면 지금도 과학은 소수파(minority)에 머물고 있으며, 정치와 종교, 미신, 무지 등이 다수파를 차지하고 있지 않나 하는 의구심마저 듭니다.

물론 2020년 초 ‘우한폐렴’이 세계로 퍼져나가며 숱한 사망자를 낼 때 과학과 의학이 신속하게 해결책을 내놓지 못해 공포와 혼란을 겪었던 대중에게 과학과 의학만 믿고 안심하라고 요구하기가 어려운 측면도 있긴 합니다.

하지만 명백히 과학으로 풀어야 할 문제를 비과학적으로 해결하려는 시도들이 너무 많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코로나19 이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해진 사람이 미국 국립알레르기감염병 연구소장 앤서니 파우치 박사일 것입니다. 그는 스스로를 ‘의료 소통가(medical communicator)’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의료 소통가’라고 표현한 이유가 짐작이 됩니다.

코로나19 팬데믹에 대해 과학자, 의학자들이 규명한 ‘사실’과 ‘진리’는 방역수칙이나 건강정보 등으로 거의 다 공개돼 있습니다.

잘 지키고 따르면 유익합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공개된 사실과 진리를 외면한 채 자신만이 옳다고 과신하거나 편향된 생각으로 곧잘 음모론에 빠져들곤 합니다.

과학, 의학자들이 진리를 찾는데 그치지 않고, 이를 대중들에게 전파하고 설득하는 구실까지 맡아야 한다는 사실을 파우치 박사가 보여주고 있습니다.

과학과 의학이 눈부신 업적을 이룩했고, 인류의 삶을 획기적으로 바꾸었지만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까지 바꾸기 위해서는 과학, 사실, 진리를 향한 연구뿐만 아니라 특별한 노력, 즉 대중과의 소통이 더 필요하다는 교훈을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얻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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