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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리 어답터(early adopter)’는 빠른(early) 채택자(adopter)라는 두 단어가 합쳐진 것으로 ‘새로운 기술이나 문화를 빨리 받아들이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최신 스마트폰, 컴퓨터 등이 출시되면 누구보다 먼저 사용해보고, 그 경험담을 타인과 공유하는 사람들이 대표적 얼리 어답터들입니다.

이들은 세상 변화를 남들보다 먼저 경험해야 직성이 풀리고 호기심이나 모험심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새로운 치료법이나 약이 나왔을 때도 남들보다 먼저 경험하는 것은 어떨까요?

지인들로부터 종종 받는 질문의 하나가 줄기세포 치료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일본에 가서 줄기세포 치료를 받았는데 비용이 꽤 들었으나 만족했다고 하던데 교수님은 줄기세포 치료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라는 질문입니다.

줄기세포 치료는 국내에서 피부 미용 또는 관절 치료 등에서 제한적으로만 이뤄지고 있습니다. 법적으로도 이런 경우에만 허용합니다.

그런데 줄기세포 또는 줄기세포 치료를 다룬 뉴스를 보면 마치 만병통치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줄기세포 치료가 넓게 허용되는 일본 등 외국에서 치료를 받은 사람도 꽤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해당 국가에서 건강보험 적용이 안 되니 비용도 꽤 많이 들었을 게 분명합니다.

문제는 이처럼 외국에서 큰돈을 들여 치료를 받으면서도 효과와 부작용 발생 여부, 비용의 적정성 등을 파악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사실입니다.

줄기세포는 기관이나 장기로 분화한다는 등의 내용이 밝혀져 있습니다. 하지만 자궁 속 태아의 줄기세포와 어른 몸에서 줄기세포의 역할이 얼마나 같고 다른지까지는 아직 다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닳은 무릎 연골에 줄기세포를 주사하면 원래의 연골과 같은 연골이 확실하게 재생된다는 연구는 아직 없습니다.

줄기세포 분화과정에서 세포가 오작동을 일으킬 가능성까지 완벽하게 차단하는 방법까지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아직은 임상 적용도 초기 단계이며, 제한적으로만 사용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처럼 과거에는 없던 치료법이 새로 개발된 것을 보건당국이 심사하고 채택 여부를 심의하는 기구인 ‘신의료기술평가위원회’도 설치돼 있습니다. 이 위원회는 새로 나온 의료 기술의 효과(유효성)와 안전성을 평가해 병-의원에서 도입할 수 있는지를 결정합니다.

이렇게 도입된 신의료기술로 치료를 빨리 받는 것, 즉 얼리 어답터는 좋을까요?

의사로서 50년 가까이 진료해온 경험과 의학 공부를 종합하면 의료에서 얼리 어답터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반걸음쯤 늦게 경험하는 것이 더 좋다고 봅니다.

레이저로 눈의 각막을 절제해 근시를 교정하는 방법은 1960년대에 개발됐습니다. 기술이 보완돼 1980년대 초에 미국에서 처음 사람에게 시도되었고, 국내 안과에서도 1990년대부터 라식, 라섹이란 이름으로 시술되기 시작했습니다. 초기에는 라식-라섹의 장기 안전성에 대한 논란이 있었고, 안과 의사들도 찬반양론으로 나뉘었습니다.

실제로 라식 시술을 받은 뒤에 각막에 심각한 이상이 생기는 원추각막 등의 부작용 사례들이 나타나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그 후 문제점을 보완하는 방법이 도입돼 라식-라섹의 안전성이 개선되었다고 합니다.

신의료기술이 개발되는 과정에서 동물실험부터 여러 차례 임상시험 등을 거쳐 안전성, 유효성이 검증됩니다. 신약 개발도 마찬가지 과정을 거칩니다.

하지만 아무리 검증된 의료 기술도 실제 환자를 대상으로 광범위하게 치료에 활용하다 보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를 모니터하기 위해 신약을 판매한 뒤 ‘시판 후 임상’ 제도를 운용하기도 합니다.

몸은 손상되면 되돌릴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처럼 ‘비가역적인 변화’까지 감수하면서 신의료기술을 서둘러 경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줄기세포 치료에 대한 저의 답변은 “먼저 남들이 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조금 더 기다렸다가 효능과 부작용 연구가 나온 뒤에 결정하시는 게 바람직합니다”라는 것입니다.

의료에서는 너무 앞선 치료보다는 안전성과 유효성을 검증받을 정도의 시간 여유를 가진 뒤에 치료받는 것이 좋다고 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