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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신은 ‘과학적 지식에 기반하지 않는 믿음’이라고 정의합니다. 종교는 내세와 구원, 사랑과 자비, 희생 등을 더 중요한 가치로 본다는 점에서 미신과 구별됩니다.

미신은 미지의 대상에 대한 불안, 인격의 미성숙, 공포, 문맹, 맹신 등을 뿌리로 삼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전염병이나 장애 등은 인간에게 불안과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수천~수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전염병 앞에서 인간은 스스로 무기력한 존재임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무당(shaman)에게 찾아가 병에 걸리지 않거나, 병이 낫게 해달라고 빌었습니다. 그것을 ‘샤머니즘’이라고 합니다.

16~17세기에 유럽에서 시작된 과학 혁명은 합리적 사고와 이성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전염병의 원인인 세균이 발견되면서 전염병에 대한 두려움도 사라질 것이며, 그로 인해 미신도 설 자리가 없어질 것으로 기대되었습니다.

하지만 21세기 첨단 과학 문명 속에 사는 요즘도 새로운 미신이 위세를 떨치고 있습니다.

코로나19(COVID-19)와 같은 평생 한 번도 겪지 못했던 전염병 팬데믹에서의 불안한 상황에 놓이게 되자 많은 사람이 선동꾼의 말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m-RNA 기술에 기반한 백신이 그렇게 빨리 개발되지 않았으면 신종 미신이 대중의 맹신과 결합해 더 큰 재앙을 초래했을지도 모릅니다.

과학에 대한 낮은 신뢰는 정치-사회적으로 민감한 이슈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큰 손실과 혼란을 초래하기도 합니다.

일본 오염 처리 수 방류 사태에서는 물론이고, 사드 전자파, 광우병 등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던 중요한 이슈에서 과학은 설 땅이 좁았습니다.

평소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하고 이념적으로 중도적인 성향이라고 평가받던 사람 중에도 오염수 사태에서 소금을 사재기하는 모습을 보인 사례들이 있었습니다.

여러 과학자, 의학자들이 언론 매체 등을 통해 해수의 방사능 오염 확률이 낮아 안전하다고 말해도 많은 사람이 이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음모가 숨어있지 않겠느냐고 의혹의 눈길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광우병이나 사드 사태 때는 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 사태들의 공통점은 건강을 핵심 논쟁거리로 삼고 있다는 점입니다. 과학-의학에 대한 낮은 신뢰를 토대로 괴담은 끈질기게 생산-유포되었습니다.

과거에는 인간의 무지가 미신의 뿌리였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들도 괴담의 재료가 될 때가 많습니다.

과학과 의학은 근거에 기반한 학문입니다. 과학적, 의학적 주장은 반드시 근거, 증거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현대 의학을 ‘근거 중심 의학(evidence based medicine)’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현대 과학-의학의 특징이면서, 약점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근거가 없거나 미약하면 강하게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감기 예방을 위해 손을 씻으라’라는 의학적 주장이 있습니다.

이것이 나오기까지 많은 연구가 진행되었습니다. 손을 씻었는데도 감기에 걸린 사람은 없는지, 또 손을 씻지 않았는데도 감기에 안 걸린 사람은 없는지를 교차로 확인해야 합니다. 만약 그런 연구를 하지 않았다면 의사들이 “손을 씻으라”라고 권고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의학이나 과학이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진리를 탐구하지만, 만고불변의 진리라고 고집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과학과 의학이 현대 문명을 꽃피웠고, 앞으로 인간의 삶을 이끌어나갈 것이란 사실만은 변함이 없습니다. 과학을 불신할수록 발전은 지체될 수 있으며, 오히려 퇴보할 수도 있습니다.

과학에 대한 낮은 신뢰를 정치가 파고들어 갈등의 진원이 되는 사례는 앞으로도 계속 나타날 것입니다. 이를 선동에 악용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입니다.

최근에는 대중 집단이나 세력이 진리나 진실을 독점하려 들거나, 자신들만이 진실의 편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상황도 종종 나타나고 있습니다.

과학은 다수결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과학이 정치적 타협이나 흥정의 대상이 될 때도 있습니다. 심지어 여론이 과학 위에 군림하는 사례도 흔히 봅니다.

과학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일은 일시적인 교육이나 계몽만으로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우리 사회 구성원의 절대다수가 사리 분별력을 갖추게 하는 방법부터 과학적으로 연구하면 좋은 대안을 찾아낼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