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뜨는 건강법의 하나가 ‘맨발 걷기’인 듯합니다. 이런 내용이 SNS로 전해지더니 최근에는 뉴스로까지 보도되고 있으며, 지자체들이 맨발로 걸을 수 있는 길을 경쟁적으로 만들고 있다는 소식도 들립니다.
맨발 걷기는 사람의 피부가 땅에 닿아 기운을 받는다는 의미로 ‘어싱(earthing)’이란 용어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어싱을 소개한 논문도 있습니다.
2015년 3월 한 해외 저널에는 ‘어싱(earthing)이 염증, 면역 반응, 상처치유, 자가면역 질환 예방과 치료에 미치는 영향’이란 논문이 발표된 적이 있습니다.
논문 저자는 미국 오리건대학교 인체 생리학과 소속 학자 등 세 명입니다. 셋 다 의사는 아닙니다.
맨발 걷기 예찬론자는 “맨발로 걸으면 좋은가”라는 질문을 받으면 이 논문을 들어 “학술지에 논문도 실렸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맨발 걷기가 몸에 좋으냐 아니냐는 최근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만, 과학 또는 의학에서 논쟁거리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커피가 몸에 좋은가, 아닌가는 대표적인 주제입니다. 하루 1~2잔 정도의 술이 건강에 좋다는 주장과 소량의 음주도 몸에 해롭다는 주장이 엇갈립니다.
또 하루 16시간은 공복을 유지하고, 식사하는 시간은 8시간 이내로 줄이는 것이 건강에 좋다는 ‘16:8 간헐적 단식’의 효과를 반박하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습니다.
오늘 <건강 편지>에서 드리려는 말씀은 맨발 걷기나 커피, 술의 건강 효과 여부가 아닙니다. 간헐적 단식이 효과가 있느냐 아니냐는 논쟁의 해답을 드리려는 의도도 아닙니다.
왜 의학, 과학은 끊임없이 논쟁적이냐는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30년 이상 의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세 가지 역할을 했습니다. 신장내과 의사로서 환자를 진료했고, 의학자로서 연구하고 논문을 발표했으며, 교수로서 의대 학생들을 교육했습니다.
이 중에서 의학자 또는 학자의 역할을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학자의 주된 임무는 연구입니다.
일반적으로 연구는 가설을 세우고, 실험 등을 통해서 얻은 데이터를 분석해서 결론을 내리는 과정을 거칩니다.
그런데 연구 결과는 가설과 일치할 수도 있으나 다르게 나오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김치를 먹는 사람이 먹지 않는 사람보다 오래 살 것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동물실험이나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을 했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만약 김치를 먹은 사람이 오래 사는 것으로 확인됐고, 이를 발표하면 배추 재배 농민을 포함해 많은 사람의 찬사를 들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김치가 건강에 도움이 안 된다는 연구 결과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이를 발표하면 전통 발효 식품의 가치도 모르는 무식한 사람이라거나 애국심도 없는 연구자라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학자는 올바른 연구 방법과 절차를 따랐는가만 살펴봐야 할 뿐 연구 결과를 윤리적으로 판단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학자는 자신의 연구 결과를 받아들여야 하며, 그 결과를 담은 논문을 학술지 등에 발표해야 합니다.
학자는 학자의 일을 해야 합니다. 학자는 진리를 추구해야 할 뿐이며, 연구의 사회적, 윤리적, 종교적 의미를 판단하고 정책 등으로 구현하는 일은 정치인, 종교인 등에게 맡겨야 합니다. 때로는 사회적 합의에 맡겨야 합니다.
이는 의학자의 연구 결과에도 당연히 적용됩니다.
어떤 의학자가 김치가 한국인 나트륨 섭취 과다 섭취의 원인이며 그로 인해 질병 부담(burden of disease)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연구했다고 해보겠습니다. 연구 결과를 얻고도 한국인의 김치 자부심을 고려해 결과 발표를 주저한다면 학자임을 스스로 부인하는 것과 같습니다. 학자는 때때로 불편한 진리 또는 진실을 기꺼이 감수해야 합니다.
연구실, 실험실에서 의학을 연구할 때는 중립적이고 냉정해야 하며, 이성적이어야 합니다.
다만 의사는 연구실을 벗어나 진료실에서 환자를 만나면 환자와 소통, 공감할 수 있는 인간미도 함께 갖추어야 합니다.
의사는 의학자와 임상 의사의 자질을 두루 갖춰야 한다고 봅니다. 여기에 교육자로서 품성과 능력까지 갖추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 의사들이 많이 배출되면, 혜택이 국민에게 돌아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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