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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숟가락-젓가락 숫자를 다 알 정도’라는 말로 이웃 간의 친밀함을 표현하곤 했습니다.

요즘은 숟가락과 젓가락이 몇 개인지는 몰라도 SNS를 통해 주변 사람이 해외여행을 다녀왔는지, 취미생활이 무엇인지는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때문인지 끊임없는 비교와 박탈감에 시달리는 사람이 늘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평등’ ‘공정’ ‘정의’에 대한 요구도 급증하고 있습니다.

원래 평등했던 인간이 공동체의 구조적 결함으로 인해 불평등해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은 듯합니다. ‘사회적 불평등’이란 말도 자주 쓰입니다.

그렇다면 불평등한 ‘인간 사회’와 달리 ‘자연의 세계’는 평등하고 공정할까요?

현대 과학은 지구 최초의 생명체가 바다에서 시작되었다고 봅니다.

세포가 바닷물에 떠 있으려면 안과 밖을 나누는 경계가 있어야 하고, 세포막이 그 경계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생명체는 세포 바깥의 환경으로부터 세포를 지켜야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세포와 세포 사이, 또 세포 안의 나트륨 농도는 0.9% 미만이지만, 바닷물의 농도는 3%로 훨씬 짭니다. 그래서 물을 흡수할 때 함께 세포 안으로 들어온 나트륨을 밖으로 퍼내야 세포 안의 나트륨 농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세포는 2억 년 전 ‘나트륨 펌프’라는 것을 만들었습니다.

나트륨 펌프의 성능은 세포의 종류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생명은 초기부터 주위와 ‘다름’이 있었습니다.

이런 주위와의 다름(불평등)을 유지하기 위해, 즉 살아남기 위해 엄청난, 부단한 노력을 하였습니다.

이런 환경과의 다름, 가까운 생명체와의 다름을 유지하기 위한 비법이 ‘유전자 다양성’의 유지입니다. 생식을 통한 유전자 교환으로 유전자 다양성을 유지해왔습니다.

즉 환경과 차별하여 다르고(불평등), 또한 같은 생명체 내에서도 서로 ‘다름’을 유지하기 위해서 다양성을 택한 덕분에 생명체는 번성하였습니다.

코로나19(COVID-19) 팬데믹 때, 어떤 사람은 코로나에 걸리는데 어떤 사람은 걸리지 않는가, 또 어떤 사람은 증상이 심하고, 어떤 사람은 증상이 미약한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던 것을 기억하시는지요?

이를 설명하는 이론의 하나도 유전자 다양성입니다.

인간은 유전자 다양성을 가지고 있어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 반응 등에 차이를 보인다는 것입니다.

특히 인간의 유전자 다양성은 지구 전체 인구가 70억 명을 넘어서면서 안정적인 수준에 도달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독한 신종 바이러스 감염증이 대유행하더라도 인간의 일부는 살아남아 인류를 멸종 위기에 처하지 않게 할 것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인간을 포함한 생명체는 똑같지 않음으로써, 숱한 환경변화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자유, 평등, 박애는 현대 사회의 보편적 가치가 되었습니다. 사회적 약자 배려, 차별 철폐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더 나아가 요즘은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을 뜻하는 DEI(diversity, equality, inclusion)의 중요성도 부각되고 있습니다. 그 의도는 좋으나, 이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듭니다.

얼마 전 대장암으로 세상을 떠난 22세 대학생의 부모가 딸이 생전에 아르바이트로 모았던 돈 600만 원을 모교에 기부했다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이 학생은 ‘가족성 선종성 용종증’이 있었다고 합니다.

기대 수명이 80세를 훌쩍 넘는 시대에 20대 초반에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이 여학생에게 삶은 과연 공정했을까를 생각해봅니다.

평등을 외치는 이 순간에도 몸이 아파 투병하는 사람, 천수(天壽)를 누리기는커녕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나는 아이들과 젊은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살아있음은 다름의 시작이며, 다양성 유지가 생명력의 기본입니다.

생명을 지키는 힘(力)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어미 새가 함께 낳은 알에서 태어나 같은 둥지에서 자라는 새들도 생명력이 다릅니다. 먼저 알에서 깨어난 새끼가 먹이도 더 먹고, 잘 크고, 심지어 늦게 깨어난 새끼를 둥지에서 밀어내고 혼자 어미 새의 먹이를 독차지하는 불평등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 같은 불평등을 보완해주는 것이 다양성입니다.

신토불이(身土不二)라는 말은 생명의 근원이 땅, 또는 우주의 구성 요소와 다르지 않다는 뜻입니다. 생명 있는 모든 것은 죽으면 다시 땅으로, 우주로 되돌아간다는 사실만은 평등합니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의 관계는 불평등합니다(다릅니다). 이것이 생명의 의미를 더 특별하게 만들고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