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뉴스레터

제목 김성권 박사의 건강편지 - 371
작성일자 2024-02-05
“대학병원보다 동네 의원이 더 쉽다”라는 말의 의미


2014년 2월 말에 동네 의원 진료를 시작했으니 이달 말이면 만 10년이 됩니다. 의원 진료를 시작했던 무렵, 오래 전 한 선배 교수에게 들었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그분은 의대 교수에서 퇴임하기 전에 의원을 개원해 진료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분은 “환자 보기가 쉽다”라고 말했습니다. 후배 의사들은 “대학병원은 중증 환자가 많으니 진료의 난도가 높고, 동네 의원은 경증 환자가 많으니 당연히 환자 보기가 쉽지 않겠는가?”라고 질문했습니다.

하지만 그분의 말씀 취지는 그게 아니었습니다.

의대 교수들도 환자를 진료합니다. 그런데 대부분 환자는 의대 교수의 진료를 받기 전 몇 단계의 절차를 거칩니다.

전공의가 먼저 진료하기도 하고, 상담 전문 간호사를 미리 만나기도 합니다. 이 과정의 환자 정보가 차트에 기록돼 의대 교수가 진료할 때 볼 수 있습니다. 대학병원에 오기 전 1, 2차 의료기관에서 진료했던 의사의 의무기록들이 첨부돼 있을 때도 있습니다.

의대 교수의 진료 예약을 잡으려면 몇 주 또는 몇 달 이상 걸릴 정도로 대기 환자가 많은 경우가 흔합니다. 따라서 진료 시간을 최대한 절약하고 효율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최대한 많은 환자 정보를 의대 교수에게 제공하도록 병원 시스템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과정이 꼭 진료의 효율성을 높여주지는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비효율을 초래하기도 합니다.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 환자의 몸 상태, 질병에 대한 느낌 등이 왜곡될 여지가 많기 때문입니다.

여러 사람을 거치면서 뒤섞인 여러 정보를 바탕으로 짧은 시간 안에 진료해야 한다는 점이 의대 교수의 진료를 어렵게 만든다는 게 선배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로부터 한참 세월이 흘러 제가 의대 교수에서 은퇴하고 동네 의원에서 진료하면서 현대 미술의 유화 같은 복잡하고 어렵게 생각되던 환자도 직접 대면하고 불편한 점을 들으면 환자의 문제 해결이 쉬워진다는 그 선배의 말씀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동네 의원을 찾는 환자는 ‘백지에 그린 그림’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동네 의원에는 ‘너무 피로하고, 갈증이 심하다’라면서 진료를 보러왔다가 당뇨병 진단을 받는 환자들이 있습니다.

자신에게 당뇨병이 있다는 사실도 몰랐고, 혈당 관리나 당뇨병 치료에 대한 지식도 거의 없습니다. 질병에 대해 백지 상태나 다름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환자에게 우선 “체중을 3.5kg 줄이고 혈당 변화를 살펴보시지요”라고 말하면 대개 목표를 달성합니다. 그래서 변화된 혈당 수치를 보여주면서 혈당 관리에서 체중감량의 중요성을 설명해주면 몸의 변화를 알아듣고 동기가 부여돼 실천을 다짐합니다.

하지만 대학병원 환자는 당뇨병 외에 고혈압, 고지혈증 등의 여러 만성 질환이 있는 경우가 많고, 일부 합병증까지 나타났을 때도 있습니다.

이런 환자에게 ‘체중감량과 싱겁게 먹기의 중요성’에 대해 여러 번 설명해도 쉽게 납득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백지가 아니라 이미 여러 번 이 색 저 색 그림을 그려놓아 오염된 도화지와 같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의사가 치료와 함께 생활 습관 실천을 강조해도 환자가 잘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치료가 어려워집니다.

동네 의원에도 만성 질환을 중복으로 가진 환자들이 오기도 합니다. 단백뇨가 있는 40대 여성 L씨. 비만, 고혈압도 있으나 어느 정도 조절되는 편이라 단백뇨가 가장 급한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체중감량, 싱겁게 먹기, 육류 섭취 줄이기 등을 권했는데 L씨는 잘 실천했고, 첫 진료 때 1,000mg이던 단백뇨가 두 달여 만에 300mg으로 줄었습니다.

질환이 여러 개라도 집중 치료 목표를 설정하고 의사와 환자가 힘을 합치면 몸의 변화도 실감할 수 있고, 피드백도 원활하게 이뤄지면 환자는 더 적극적으로 치료에 나서곤 합니다.

대학병원에서도 이런 방법을 시도할 수 있으나 동네 의원이 더 유리한 것은 분명합니다.

대학병원은 대개 환자가 많아 1~2주일 뒤의 환자 상태 변화를 의사가 체크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대학병원과 동네 의원의 수준을 비교하려는 의도는 아닙니다. 대학병원에서 미처 겪지 못했던 일들을 동네 의원에서 새롭게 경험하면서 질병 예방과 치료에 대한 시야를 넓힐 수 있게 되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첨부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