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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김성권 박사의 건강편지 - 370
작성일자 2024-01-29
저출산 시대에 임신을 말려야 하는 안타까움


한국의 합계출산율이 0.78 수준으로 낮아지면서 국제적으로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한 외국 전문가는 저출산으로 인한 한국의 인구 감소율이 흑사병 당시 유럽보다 더 심각할 것이란 분석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저출산 문제의 본질은 아기가 적게 태어난다는 사실입니다. 출산을 원치 않는 사람들이 증가한 것이 주된 원인입니다.

그런데 이것만이 전부는 아닙니다. 아기를 낳고 싶어도 낳지 못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난임 여성의 임신을 위한 지원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꾸준히 나오고 있습니다.

병원의 진료 과목 중에서 임신-출산에 직접 연관된 것으로는 산부인과와 소아청소년과가 떠오릅니다만, 다른 진료 과들도 연관돼 있습니다.

신장내과도 그중 하나입니다. 만성콩팥병, 루푸스 등의 만성질환이 있거나 신장 투석 중이거나 신장이식 수술을 받은 가임기 여성이 임신을 준비할 때는 신장내과 의사의 진료를 꼭 받아야 합니다.

20~30대 여성 중에도 만성콩팥병을 앓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IgA 신증에 의한 콩팥 기능이 감소한 경우가 많습니다만, 요즘은 당뇨병이나 고혈압 등에 의한 콩팥 기능 저하 사례도 있습니다.

얼마 전에 진료받은 33세 여성 A씨. 그의 사구체여과율은 50% 수준입니다. 사구체여과율이 60% 미만인 상태가 3개월 이상이면 만성콩팥병으로 진단하는 기준을 적용할 때 A씨는 만성콩팥병입니다. 더욱이 사구체여과율만 낮은 게 아니고, 단백뇨까지 동반되고 있습니다.

A씨는 콩팥 문제 외에 제2형 당뇨병도 함께 있습니다. A씨는 “혈당을 조절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지만, 스트레스가 너무 많아서인지 잘 조절되지 않아요”라고 말했습니다.

기혼인 A씨는 임신을 원합니다. 요즘처럼 태어나는 아기가 적은 세상에 임신하고 싶다는 여성이 있으면 박수를 받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부부끼리 재미있게 살 방법을 더 많이 찾아보시면 좋겠습니다”라고 조심스럽게 말해주었습니다. 본뜻은 “임신하시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것입니다.

만성콩팥병 여성들의 임신, 출산을 다룬 연구가 많이 나와 있습니다.

과거에는 만성콩팥병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는 이유로 만성콩팥병이 있는 여성들의 임신-출산을 말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의학-의료의 발전으로 요즘은 만성콩팥병이 있는 경우는 물론 신장 투석 중이거나 신장 이식 수술을 받은 여성들이 임신, 출산하는 사례도 꽤 있습니다.

그런데 왜 A씨의 임신을 찬성하지 않았을까요?

임신하면 평소 100mL 안팎이던 사구체여과율이 150~155mL/분으로 증가합니다. 뱃속 아기의 콩팥 기능까지 대신하느라 엄마의 콩팥에 과부하가 걸리는 것이지요. 다만 출산하면 금세 정상 범위로 회복합니다.

하지만 A씨는 사구체여과율이 떨어진 상태에 단백뇨가 있고, 당뇨병에 과체중까지 있습니다.

이런 몸 상태에서 임신하면 임신중독증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임신중독증은 태아는 물론 산모의 생명까지 위험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임신중독증 등의 위험을 잘 피한다고 해도 A씨의 콩팥이 임신을 잘 견디고, 출산 후에 정상 기능을 회복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가 어렵습니다.

확률로만 본다면 A씨의 콩팥 기능이 좋아질 가능성보다는 나빠질 가능성이 높은 편입니다.

임신으로 인해 콩팥 기능이 더 나빠지고 나중에는 신장 투석이나 신장 이식수술을 받아야 할 상태까지 될 수 있습니다. 물론 건강하게 출산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습니다만, 나빠질 확률을 무시하지는 못합니다.

오랫동안 여성의 임신과 출산은 의료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요즘 산부인과가 하는 출산의 상당 부분도 ‘산파(조산사)’가 맡았습니다.

그러다 미국 하버드대 의대가 임신부의 산전 관리부터 분만, 산후 관리 등을 의사가 맡는 주산기(周産期) 의학을 정립했습니다. 현대적 산부인과 의학의 태동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영유아 사망률과 산모 사망률을 획기적으로 낮추었습니다. 의학사의 위대한 업적 중 하나입니다.

만성콩팥병과 당뇨병 등의 만성질환이 여러 개 있는 여성들이 안전하게 임신-출산할 수 있게 하는 연구에 투자해, 좋은 연구 성과와 임상 표준까지 만들어낸다면 한국도 의학사의 한 페이지를 쓸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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