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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사는 것(well-being)만큼 잘 죽는 것(well-dying)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잘 사는 것만큼 잘 죽는 것 또한 쉽지 않습니다. 사는 것과 죽는 것은 연결돼있는 것 같기도 하고, 동떨어진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잘 살다가 잘 죽으려면 지금부터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백혈병 환자 A, B씨 중에서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지를 생각해보시면 힌트를 얻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A씨는 백혈병 진단을 받고 처음에는 “의사들이 진단을 잘 못 했을 것”이라며 암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병원을 몇 군데 더 들러서 다시 진단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백혈병이 맞았습니다.

죽음을 앞두었거나, 암 진단을 받은 사람은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 등의 5단계를 경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A씨는 처음에는 암을 인정하지 않다가(부정) 얼마 지나지 않아 ‘분노’에 휩싸였습니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왜 하필 나에게 암이 생겨”라는 말을 되풀이했다고 합니다.

A씨의 분노는 도를 넘는다고 할 정도로 심했습니다. 치료 과정에서 의료진에게 막말을 쏟아내기도 했고, 간병하는 가족들에게 악담을 퍼붓기도 했습니다.

A씨의 투병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그는 분노에 휩싸인 상태로 죽음을 맞았습니다. 평생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고, 가족을 위해서도 애쓰며 살았겠지만 삶의 마지막에 보여준 A씨의 모습은 아름답지 않았습니다.

똑같은 백혈병을 진단받은 B씨.

그 역시도 처음 암이라는 사실을 통보받았을 때는 충격을 받았을 터입니다만, 바로 마음을 다잡고 “치료하면 낫겠지”하고 말하면서 오히려 가족들을 위로했습니다.

치료 과정에서도 의료진을 만나면 늘 “고맙다”라고 인사했고, 웃는 얼굴을 보였습니다.

그러면서 틈틈이 자신이 죽고 난 뒤에 남을 가족들을 위해 재산을 기록하고 보험까지 꼼꼼하게 챙겼습니다.

B씨는 치료가 잘 되었고,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잘살고 있습니다.

두 사람의 삶과 죽음을 가른 결정적인 요인이 무엇이었는지는 아직 현대 과학이나 의학으로도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삶과 질병과 죽음 앞에서 겸손한 태도는 잘살고 잘 죽는 것을 가르는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겸손한 사람도 병을 다 이길 수는 없으며, 죽음을 피해갈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부정과 분노에 휩싸여 끝까지 자신과 타인을 괴롭히다가 죽는 것과 자신의 삶을 차분하게 회고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고마워하며 죽음을 맞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어떤 사람들은 “착하게 살면 명이 짧고, 남을 괴롭히고 욕을 먹어야 오래 산다”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겸손하게 살면 손해만 본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가족과 의료진을 들들 볶다가 그야말로 피를 토하고 죽는 사례들을 봤습니다.

반대로 병을 겸손하게 받아들이고,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 고마워하다가 죽는 사람들도 봤습니다.

하지만 40년 이상 진료 현장에서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섰던 수많은 환자를 지켜본 경험으로 미뤄볼 때 겸손 이상의 웰빙과 웰다잉의 비법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남들은 다 건강하고, 행복한 것 같고 나에게만 질병과 불행이 찾아오는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에피소드를 말씀드립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첫 부인과 딸을 교통사고로, 장남은 뇌종양으로 잃었습니다. 그 힘든 순간에 바이든의 부친은 두 컷짜리 만화를 선물하면서 위로했다고 합니다.

그 만화는 불행이 닥친 한 사람이 하늘에게 “왜 하필 나인가(Why me)?”라고 따지자 하늘이 “너는 왜 안 되냐(Why not)?”라고 되묻는 두 개의 장면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하면서 살되,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닥치면 겸손하게 받아들이라는 메시지가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