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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배우고 익혔던 고사성어, 속담, 명구(名句)들은 다 내용이 좋았고, 인생에 도움이 될 내용이었습니다.

그중 하나는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마라”라는 것이었습니다. 근면, 성실하면 학생 때는 공부를 잘하고, 직장인이 된 뒤에는 남보다 빨리 승진하고, 사업하면 돈도 더 많이 벌 수 있습니다.

인생을 성공적으로 이끌어주는 교훈이 담긴 문장입니다.

그런데 이런 말은 청소년~중장년기까지 인생의 전반전에는 훌륭합니다만, 인생의 후반전에는 의미를 잃기도 하고 때로는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는 것이 우리 삶의 아이러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진료실에서 처음 만나는 환자들에게 병의 증상과 경과 등에 대해 의사가 물어보는 것을 문진(問診)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문진은 질병의 내용에만 한정되지 않습니다. 환자의 성격이나 성향도 파악합니다.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 유형에 따라 나눌 때 A 타이프인 사람들이 심혈관 질환 발생 위험성이 높다고 봅니다.

이 사람들은 성취욕구가 강하고 완벽주의 경향이 있으며 늘 긴장하는 성향을 보입니다. 그러다 보니 조직 생활에서 유능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승진도 빠릅니다. 사업을 크게 해서 성공한 사업가들도 이 유형이 많습니다.

이들에게는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어렵습니다. 내일은 고사하고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바로 성과를 내야 한다고 조바심을 내기도 합니다.

이렇게 하루하루를 살면 많은 업적을 이룰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누적된 과도한 스트레스, 수면 부족, 과로, 과음-과식 등은 육체적, 정신적 건강 문제를 불러올 확률이 높아집니다.

젊을 때는 대부분 건강하므로 몸과 마음이 과도한 성취욕구에 따른 무리를 감당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장년 이후에 들면 고혈압, 심혈관 질환 등의 만성질환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평소에 건강한 사람이 의사인 저를 만나러 오지는 않습니다. 일단 저의 진료를 받으러 왔다는 것은 건강에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그 문제는 대부분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만성콩팥병 등의 만성질환입니다.

그런데 이 만성질환은 입원 치료나 수술, 며칠 간의 약물 복용으로 단기간에 해결되지 않습니다. 일단 만성질환이 발병하면 최소한 몇 년은 투병해야 하고, 길게는 평생을 몸에 지니고 살아야 합니다.

오랫동안 만성질환을 관리, 치료하는 데는 환자 본인의 마음가짐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성취욕이나 자의식이 강하고 큰 성공을 이룬 사람 중에는 만성질환도 자기가 성공한 것 같이 자신의 힘으로 관리 가능하며, 단기간에 싸워 이길 수 있다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사례가 종종 있습니다.

이들에게 “만성질환을 꾸준히 관리-치료하세요”라고 말하면 마치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세요”라고 들리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금연, 운동, 소금 섭취 줄이기와 같은 생활 습관 변화는 뒷전으로 미루고 혈압이나 혈당에 좋다는 건강식품을 잔뜩 사서 먹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는 만성질환의 관리나 치료에 효과적이지 않습니다.

‘만성(慢性)질환’이란 ‘급히 심해지지도 않으면서 쉽사리 낫지도 않는 병의 성질’이고, 급성(急性)질환은 ‘급히 일어나는 성질의 병’입니다.

만성질환과의 싸움은 장기전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만성질환과 급하게 싸우려다가는 이기기는커녕 역습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만성질환이 있으면 조바심 내지 말고 느긋한 스타일로 성향, 인생관을 바꾸려는 노력을 권합니다.

말도 좀 천천히 하시는 습관을 들이고, 밥도 천천히 드시라고 권합니다.

화급하지 않은 일은 내일로 미뤄도 괜찮다고 생각하시기를 바랍니다.

대인춘풍(待人春風) 지기추상(持己秋霜)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타인은 봄바람처럼 너그럽게 대하고, 자신에게는 가을 서리처럼 엄격하라’라고 하는 교훈적 내용입니다.

하지만 나이 들어 자신에게 너무 엄격하게 하면 몸과 마음에 적지 않은 부담을 줄 수도 있습니다.

타인에게나 자신에게나 조금 너그러워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인생관을 바꾸면 만성질환 관리도 잘 되고, 행복하게 나이를 먹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