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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 남성 A씨. 그는 10년 이상 당뇨병을 앓아왔고, 고혈압도 있습니다. 콜레스테롤도 정상보다 높습니다.

만성콩팥병 진단도 받았는데, 최근 사구체여과율이 66mL/분으로 약간 좋아진 상태입니다. 사구체여과율이 60mL/분보다 낮은 상태가 3개월 이상 지속되면 만성콩팥병입니다.

만성콩팥병 진단을 받았더라도 약물 치료와 식이-운동요법을 잘하면 사구체여과율이 높아질 수 있습니다.

다만 그럴 때도 진짜 사구체여과율이 개선된 것인지, 아니면 나빠지는 상태에서 일시적으로 좋아진 것처럼 보이는지 잘 구별해야 합니다.

A씨의 콩팥은 나빠지고 있는 상태에서 일시적으로 약간 좋아진 것입니다. 이대로 가면 말기신부전으로 진행될 수도 있습니다.

A씨와 같은 사례는 드물지 않습니다만, 문제는 따로 있습니다.

그는 고학력 전문직 종사자로서 당뇨병, 고혈압, 고지혈증 등 만성질환 진단 초기부터 병원에 다니면서 나름대로 관리를 위한 노력을 해왔습니다.

그 덕분에 혈압이나 콜레스테롤은 정상 범위에서 관리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왜 만성콩팥병은 점점 심해지고 있는 것일까요? 뭐가 잘못되고 있는 것일까요?

1차 원인은 당뇨병 때문입니다.

그의 공복 혈당 수치는 320mg/dL로 정상(70~110mg/dL)을 3배쯤 웃돌고 있습니다. 당화혈색소도 11%로 당뇨병 진단 기준(6.5% 이상)보다 매우 높습니다. 그의 당뇨병은 매우 심하며, 당뇨병 합병증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A씨는 당뇨병 약도 먹는 등의 노력을 했는데 왜 결과가 나쁜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는 “그동안 의사들이 약만 주고, 혈당 관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세하게 가르쳐주지도 않았다”라는 말도 했습니다.

사실 혈당 측정을 포함한 당뇨병 진단은 어려운 분야는 아닙니다. 그동안 A씨를 진료했던 의사들이 당뇨병을 잘 몰라서 자세하게 이야기해주지 않았을 가능성은 없다는 뜻입니다.

의사를 포함한 의료진이 당뇨병 관리에 대해 설명해주었겠지만 A씨는 귀담아듣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들은 적이 없다”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식단, 운동, 체중 관리, 약 복용 등 흔한 상식적인 이야기라 귀에 들리지 않았고, 지레 짐작한 ‘왕도’나 ‘비법’을 이야기해주지 않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고학력 전문직 종사자나 자수성가한 사람 등 자의식이 강한 사람들에게서 흔히 나타납니다.

만성질환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2가지는 약물 복용과 생활 습관 개선입니다.

약을 열심히 먹는다고 해도 오랫동안 몸에 밴 생활 습관을 고치지 않으면 만성질환이 개선되지 않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더 나빠지기도 합니다.

A씨도 그에 해당합니다.

그는 키 174cm에 체중 83kg으로 체질량지수(BMI) 27.4입니다. BMI 25~29.9는 비만입니다.

비만은 A씨의 콩팥 기능을 떨어뜨리는 2차 원인입니다.

그가 당뇨병 관리에서 필수적인 적정 체중 유지에 실패했다는 사실이 높은 혈당 수치(당화혈색소)로도 확인됩니다.

A씨는 당뇨병 관리 실패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지 않고, 의사를 탓하는 듯한 태도를 보입니다.

그의 태도만 보면 약만 먹거나 주사를 맞으면 질병이 다 해결된다는 ‘만병통치약’과 같은 기대를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에 주목받고 있는 비만 치료제 ‘위고비’도 대중의 이런 기대 심리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약만 먹으면 운동이나 식단조절 없이도 체중감량을 시켜주고, 혈당도 개선해준다고 하니 만병통치약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약의 안전성, 부작용 등에 대한 장기 추적 연구 결과가 나온 뒤에나 결론을 내릴 수 있을 뿐입니다.

만성질환의 관리-치료에는 왕도나 지름길은 없습니다. 늘 하듯이 생활 습관을 잘 관리하는 것이 왕도입니다.

한 가지로만 만성질환과 싸워 이길 수 없다는 뜻입니다.

꾸준한 약 복용과 함께 흡연-절주-운동-적정 체중 유지-건강한 식단-싱겁게 먹기 등의 생활 습관 개선을 묵묵히 실천하는 것이 왕도라는 말씀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