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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수로 일하던 1990년대 초반 일본 대학병원을 방문했을 때의 일입니다. 병원 건물을 둘러보는데 은행, 편의점, 찻집 등이 있는 것은 그러려니 했는데, 한 귀퉁이에 있던 택배-운송회사 사무실 간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병원 관계자에게 그 이유를 물었더니 “보호자 없이 혼자 입원하는 환자를 입원에서 병원까지 태워주고 짐도 날라주는 서비스를 해주며, 반대로 퇴원할 때도 집에까지 데려다준다”라고 말했습니다.

입원 치료를 받는데 가족 등 보호자 없이 환자 혼자 소지품을 챙겨서 병원에 온다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이런 사례는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생각하기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30년 안팎의 세월이 흐른 지금은 우리나라 병원에서도 혼자 입-퇴원하는 환자 사례를 볼 수 있게 됐고, 앞으로는 더 늘어날 것입니다.

지난 <건강 편지>에서 말씀드렸듯이 과거에는 질병 치료와 간병의 중점이 가족에게 있었다면, 점점 공적인 것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질병 치료도 ‘공공재’ 성격으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지요.

1990년대까지는 아픈 사람을 돌보는 일은 주로 부인, 며느리, 어머니 등 전업주부인 여성이 맡았습니다. 환자가 병원에 있을 때는 물론, 집에서 투병할 때도 간병은 주로 이분들의 몫이었습니다.

하지만 노인 요양보험이 도입되고, 도시인들의 삶이 바빠지는 등의 변화가 생기면서 간병인이 환자를 돌보는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이때까지는 간병 기간이 그리 길지 않았으므로, 간병인 고용에 따른 비용 부담이 아주 크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병원 치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장기간 투병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이들을 누가,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사례가 크게 늘었습니다.

이미 간병이 필요한 환자가 전국에 100만 명에 이르며, 3년 안에 300만 명으로 증가할 것이란 전망도 나옵니다.

요양병원, 요양원 등이 늘고는 있습니다만 한 명의 간병인이 여러 명을 돌봐야 하는 한계 때문에 바람직한 돌봄 서비스가 이루어지겠냐는 논란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가정에서는 집에 24시간 상주하는 전담 간병인을 구하기도 하는데, 비용이 월 300~400만 원에 이릅니다. 웬만한 직장인은 한 달 월급을 간병인 비용으로 고스란히 지불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간병인 비용 부담 때문에 자녀 등 가족 중 한 명이 직장을 그만두고 환자를 돌보아야 하는 경우까지 생깁니다.

일본에서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됐던 ‘간병 휴직’, ‘간병 퇴직’이 우리나라에서도 현실화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간병이나 돌봄이 가족→사회로 변화하면서 공공재적 성격으로 바뀌고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만, 다시 가족으로 되돌아가는 등 복잡한 모습입니다.

여기에 요양시설 또는 재가 노인들을 위한 돌봄 서비스 종사자들의 근로 조건, 인권 침해 등의 문제도 끊임없이 불거져 나옵니다.

노인들의 나 홀로 투병, 병원 다니기는 1인 가구의 증가와 인구 고령화 등에 따라 생기고 있는 큰 사회 변화의 한 부분일 뿐입니다.

물 위에 떠 있는 ‘빙산의 일각’과 비슷합니다. 물 아래에 더 큰 문제가 자리잡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나마 혼자서 병원에 다닐 수 있고, 운동이나 식사 등을 챙기고 만성질환을 관리할 수 있다면 다행입니다.

만성질환 합병증과 체력 저하로 혼자서는 병원마저 갈 수 없는 고령자 문제도 있는데, 이 사람들을 위한 의사의 왕진은 아직 제도화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요양시설이 대안이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대부분 한 방에 4~6명 이상 생활하므로 사생활 보호가 원활하지 않고 돌봄 서비스도 부실하다는 이유를 들어 요양시설 입소를 극도로 싫어하는 노인들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일본 조사에 따르면 ‘내 집에서 살다가 죽는 것’을 바라는 노인이 많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도 내 집에서 살며 아플 때 병원에 다니면서 적절한 치료를 받다가 품위를 유지한 채 죽기를 바라는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이를 위한 인력과 비용, 의료, 돌봄 등의 사회적 자원을 쓸 준비를 우리는 하고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