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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김성권 박사의 건강편지 - 353
작성일자 2023-10-04
세월 따라 달라지는 환자와 보호자


제가 처음 의대 교수가 됐던 40여 년 전과 비교하면 병원 모습도 참 많이 변했습니다.

그 시절에는 안타까운 사연이 많았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누나, 남동생으로 이뤄진 가족 중에서 아버지나, 아들이 큰 병에 걸리면 빚을 내는 한이 있더라도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받게 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나 딸이 아프면 대개 동네 의원에서 치료받게 하는 정도였고, 심지어 민간요법에나 의지하게 하는 사례들도 있었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이 이야기를 들으면 “말도 안 된다”라고 펄쩍 뛸 일이지만. 가부장제의 전통과 남아선호 사상, 그리고 가난이 한국인의 삶을 짓누르고 있던 그때에는 어느 정도 체념하고 받아들였습니다.

이제는 아버지든 어머니든, 딸이든 아들이든 똑같이 치료받는 게 당연해졌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일부 저개발국-개발도상국에서는 질병 치료에 성별 차이가 존재합니다.

예컨대 세계 어느 나라에 콩팥을 기증하는 사람의 성별은 차이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콩팥을 기증받는 사람은 남성이 더 많습니다.

이처럼 질병 치료에는 의학-의술 외에도 사회-경제적, 문화적 요소 등 수많은 변수가 개입하곤 합니다.

그중에는 보호자도 있습니다.

자녀가 아프면 어머니가, 남편이 아프면 부인이 보호자가 돼 진료받으러 오는 게 가장 흔한 사례입니다.

반대로 부인이 아플 때 남편이 따라오는 경우는 드물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60~70대 여성 환자가 진료를 받으러 올 때 남편이 동행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은퇴 후 남편들의 시간 여유가 생겨서인지, 아니면 남편과 부인의 지위가 대등해져 보호자로 나서는 남편들이 늘었기 때문인지는 판단하기 어렵습니다만 변화가 엿보이고 있습니다.

노인 환자 중에 배우자-자녀가 아닌 남자 친구 또는 여자 친구가 보호자로 동행하는 이색적인 사례들도 있습니다.

사별 또는 이혼 후 혼자 살던 노인에게 썸타는 사람이 생길 때 병원이 데이트 코스가 되는 셈이라고 할까요?

혹시 나이 든 후에 ‘썸’이나 ‘로맨스’를 꿈꾸시는 분이 있다면 병원에 함께 가주시고 때로는 간병인 역할까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기를 바랍니다.

환자 보호자의 가장 큰 변화는 80~90대 고령 환자가 보호자 없이 혼자 진료를 받으러 오는 경우가 늘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이를 상상하기 힘들었지요.

의사인 저도 처음에 고령의 ‘나 홀로 환자’들을 대할 때는 낯설었지만, 이제는 자연스러워졌습니다. 1인 가구 고령자가 늘었으며, 건강하게 사는 분들이 그만큼 많다는 의미로 봅니다.

이런 세태는 좋든 싫든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한 사람이 아프면 전체 가족이 나서서 병원에 동행하고, 간병하고, 비용까지 대면서 고통을 분담했던 시대는 흘러갔고, 질병 치료가 개인의 몫이 되는 시대가 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혼자 아프고, 혼자 병원에 다니고, 혼자 입원-퇴원하는 모습이 더 흔해질 것입니다.

요즘도 대학병원에 입원하려면 ‘입원약정서’ 등의 서류에 환자 보호자가 서명하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보호자 입원약정서도 다른 걸로 대체하거나, 없앨 준비를 병원들도 해야 할 것으로 봅니다.

서명해줄 보호자가 없어질 수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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