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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김성권 박사의 건강편지 - 328
작성일자 2023-04-10
펭귄의 발과 사람 콩팥의 혈관


남극의 평균 기온은 영하 20~30도쯤 된다고 합니다. 바람까지 불면 체감온도는 더 낮을 것입니다. 사람이 남극에서 신발을 신지 않고 있으면 하루도 못 넘기고 동상에 걸리고 말 것입니다.

그런데 남극에서 태어나서 사는 펭귄이 동상에 걸렸다는 말은 듣질 못했습니다.

펭귄의 체온은 사람보다 약간 높은 섭씨 37도이며, 정온 동물입니다. 정온 동물이란 말은 외부 환경이나 기온에 상관없이 일정한 체온을 유지하는 것으로 주로 포유류나 조류에 해당합니다. 변온 동물은 외부 환경에 맞춰 체온이 변하는 것으로 대개의 어류, 양서류, 파충류가 속합니다.

그렇다면 무척 추운 남극에서 방한화 없이 사는 펭귄은 왜 동상에 걸리지 않을까요?

그 비밀의 열쇠는 펭귄 발에 있는 특수한 구조에 있습니다. 펭귄의 심장에서 나온 피가 동맥을 통해 발의 모세혈관으로 가는 것은 사람과 비슷합니다. 그런데 펭귄 발의 동맥은 정맥과 마치 그물망처럼 서로 얽혀 있습니다. 이를 ‘멋진 그물(wonder net)’이라고도 합니다.

이것은 일종의 ‘열교환기’입니다. 따뜻한 동맥피의 열을 차가운 정맥피에 전달해줌으로써 동맥피 온도는 낮추는 대신, 정맥피 온도를 높여 심장으로 되돌아가게 합니다.

이렇게 열을 교환함으로써 펭귄 발에는 심장(37도)보다 온도가 낮은 동맥피가 공급된다고 합니다. 마치 변온 동물과 비슷한 상태가 되는데, 이렇게 하는 것이 펭귄 발의 동상을 막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환경에 대한 생명체의 적응력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사람의 몸에도 환경 적응력이 있습니다.

사람의 혈액 속 나트륨 농도는 138~142mEq/L를 유지합니다. 142mEq/L은 소금 농도로 약 0.83%입니다. 생리식염수가 대개 0.9%인 것은 혈액 소금 농도보다 약간 높은 수준으로 만든 것입니다.

그런데 짜게 먹어 소금이 몸 안에 많이 들어오면 일시적으로 혈액의 나트륨 농도가 정상(142mEq/L)보다 높아질 수 있습니다.

이러면 혈액을 거르는 콩팥이 나트륨을 몸 밖으로 배출해서 혈액의 나트륨 농도를 142mEq/L 아래로 낮춥니다. 보통 때 소변의 나트륨 농도는 110mEq/L(약 0.65%) 수준으로 피보다 싱겁지만, 짜게 먹은 뒤 소변의 농도는 0.9% 이상으로 피보다 짭니다.

사람의 콩팥은 마치 펭귄 발의 혈관처럼, 콩팥 혈관도 ‘멋진 그물’ 기능이 있어 평소에는 나트륨을 잘 보존하여 싱거운 소변을 만들다가 나트륨이 너무 많이 들어오면 몸 밖으로 적극적으로 배출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 번만 짜게 먹는다면, 콩팥이 나트륨 농도를 정상으로 되돌리므로 별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짜게 먹으면 혈액의 나트륨 농도는 142mEq/L 아래로 내려가기 무섭게 다시 올라갑니다.

이처럼 과도하게 높은 나트륨은 혈관 안쪽의 내피세포를 손상시켜 동맥경화증과 고혈압을 일으킵니다. 이것이 장기화하면 심뇌혈관 손상, 만성콩팥병 등의 발병 위험이 급증합니다.

나트륨 농도가 142mEq/L를 넘어서면 노화 위험이 50%, 만성질환은 39%, 조기 사망률은 21% 증가한다는 연구를 <건강 편지>에서 소개한 적도 있습니다.

펭귄 발의 ‘멋진 그물’은 수만~수십만 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 진화의 산물입니다.

인간은 대부분 동물과 마찬가지로 수백만 년 동안 소금을 따로 먹지 않고 살았습니다. 그러다 약 1만 년 전 농업혁명으로 생겨난 잉여생산물을 보관-저장하기 위해 소금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소금이 귀했기 때문에 과잉 섭취는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19세기 산업혁명 이후 식품의 대량생산이 가능해졌고 20세기 들어 가공식품을 싼값에 먹을 수 있게 되면서 소금 섭취량이 급증했습니다.

현대 한국인은 구석기인의 하루 나트륨 섭취량(690mg-소금1.7g)보다 7배나 많은 나트륨을 몸에 쏟아붓고 있습니다. 몸이 언제까지 버텨낼까요?

엄청난 양의 나트륨 섭취에 적응하기에 100여 년은 매우 짧습니다. 진화의 긴 역사에서 보면 100여 년은 ‘없는 것’과 같습니다.

펭귄의 발은 오랜 시간에 걸쳐 추위에 적응됐지만, 사람의 혈관은 과도한 소금에 적응할 틈이 없었습니다. 이 순간에도 혈관이 망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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