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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김성권 박사의 건강편지 - 326
작성일자 2023-03-27
아프지 않은데 왜 병원에 가나? - <2> 통증과 의료권력의 이동


H(65)씨는 얼마 전 극심한 옆구리 통증에 시달리다 병원에 가서 대상포진 진단을 받았습니다. 요로결석으로 한밤중에 응급실에 간 C(43)씨는 결석을 잘게 부숴서 몸 밖으로 배출하는 치료를 받았습니다.

대상포진이나 요로결석은 ‘아픈 것’의 대표적인 질환들입니다. 통증의 정도를 가장 약한 것부터 가장 강한 것까지를 10단계로 나눌 때 대상포진이나 요로결석은 상위에 분류되곤 합니다.

이런 심한 통증은 의사의 치료 외에는 뾰족한 방법이 없습니다. 민간요법에 의지하거나 참고 견뎌서는 해결이 어렵습니다.

질환을 급성과 만성으로 나눌 때, 급성질환의 중요한 증상 중 하나가 통증입니다.

통증은 인류 역사상 사람들을 병원에 가게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이었습니다.

저는 대학병원에 근무하던 2003년, ‘서울대병원 입원 환자 23만 건의 주 증상과 진단명 및 사망 분석논문’이란 논문을 학술지에 발표한 적이 있는데 입원 원인 1위가 통증(13.9%)이었습니다.

이 논문의 분석 대상은 90년대였고, 대학병원의 입원 환자를 대상으로 했다는 제한점이 있습니다만, 통증이 병원에 가게 만드는 원인 1위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나이로도 30세 이상에서는 모두 입원 원인 1위가 다 통증이었습니다. 아프기 때문에 병원을 찾는다는 것이었죠.

통증 부위별로는 복통(40.9%)이 가장 많았고, 이어 흉통(15.6%), 요통(8.9%), 하지통(8.8%), 두통(8.6%) 순이었습니다.

통증을 치료하는 주체는 의사이므로 이 논문에 나타난 현상만 보면 의료권력은 의사에게 계속 남아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입원뿐 아니라 외래까지 확장하고, 최근의 달라진 환자를 분석하면 이와는 다른 결과가 나올 것으로 판단됩니다.

지난 30년간 인구가 고령화됐고, 만성질환이 엄청나게 늘었습니다.

이제는 ‘아프지 않아도’ 병원에 가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통증이 없는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만성콩팥병 중 하나 이상 있는 한국인은 수백만 명에 달합니다. 2~3개 이상 가진 사람도 무척 많습니다.

하지만 이들 병을 가진 사람 중에서 “고혈압 때문에 아파 죽겠다”라거나 “고지혈증으로 진통제를 먹어야겠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그런데 합병증이 발생하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앞서 소개한 논문을 보면 흉통의 원인 1위는 협심증, 2위 심근경색증이었습니다.

고혈압이나 당뇨병, 고지혈증이 직접 흉통을 일으키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만성질환을 제대로 관리, 치료하지 않고 방치해 동맥경화증이나 관상동맥 질환이 생겨 악화하면 협심증, 심근경색증 등이 발생합니다.

이때 심한 통증이 나타납니다. 물론 심한 통증 없이 갑자기 사망하는 돌연사도 있으므로 특히 조심해야 합니다.

통증은 제때 병원에 가면 치료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만성질환의 합병증에 의한 통증이 나타날 때는 상황이 달라집니다.

협심증으로 인한 통증(흉통)이 발생해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면 흉통 그 자체는 해소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흉통을 일으킨 협심증은 일단 발생한 뒤에는 완치하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좁아지거나 막힌 심장 혈관을 풍선을 넣어 뚫거나 스텐트로 확장하는 등의 치료를 할 수 있지만, 동맥경화증이 생긴 혈관을 건강한 혈관으로 완전히 되돌릴 방법은 마땅치 않습니다.

의사가 딱 부러지는 해결책을 줄 수 없다는 뜻입니다.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등의 치료 목적은 완치가 아니라 합병증이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 관리하는 것입니다.

만성질환을 진단하고 어떤 치료법을 선택할 것인지 등은 여전히 의사의 일입니다. 하지만 매일 운동하고 싱겁게 먹고 담배를 끊고 약을 챙겨 먹는 것까지 의사가 다 관여할 수는 없습니다.

지난 <건강 편지>에서 소개한 미국의 백만장자 벤처기업가처럼 일 년에 26억 원쯤 쓴다면 일일이 의사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모든 사람이 이런 혜택을 누릴 수는 없습니다.

만성질환 예방, 관리의 무게추가 환자에게 옮겨가고 있음을 뜻하는 ‘의료권력 이동’이 독자 여러분께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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