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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병원 교수로 근무할 때 미국의 명문 예일대 의대를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도서관을 둘러보았는데, 복도에 걸려 있던 그림들이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20여 점의 그림들이 모두 통풍을 주제로 한 작품이었습니다.

중세 유럽의 왕이나 귀족들이 통풍에 걸려 발에 붕대를 칭칭 감고 있거나 맛있는 고기와 술 등으로 가득한 식탁에 앉아 있는 모습이 사실적, 또는 풍자적으로 표현돼 있었습니다. 통풍에 시달리는 왕과 귀족들의 얼굴에 극심한 고통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통풍의 별명이 ‘제왕의 병’입니다.

루이 14세, 나폴레옹 등 유명한 왕들이 통풍을 앓았다고 전해지고 있는 데서 유래했습니다. 세종대왕께서도 통풍을 겪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옛날에는 왕이나 소수 귀족만 단백질이 풍부한 음식이나 술을 먹었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삶이 윤택해진 요즘은 많은 사람이 옛날의 왕들만큼 잘 먹습니다. 상당수 현대인의 밥상은 왕의 수라상에 버금갈 정도입니다.

그 때문인지 통풍을 앓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보건 통계(2021년)를 보면 통풍은 49만2,300여 명으로 5년 만에 24.6% 늘었습니다.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통풍은 ‘바람만 스쳐도 발가락이 아픈 질환’으로만 인식될 뿐, 고혈압이나 당뇨병, 고지혈증, 비만 등 만성질환의 발병 위험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는 사실은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만성질환을 중복으로 가진 것을 대사증후군이라고 합니다. 대사증후군은 혈압(130/85mmHg 이상), 공복혈당(100mg/dL 이상), 중성지방(150mg/dL 이상), 허리둘레(남 90cm 이상, 여 80cm 이상), HDL콜레스테롤(남 40mg/dL 미만, 여 50mg/dL 미만) 중에서 3가지 이상에 해당할 때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통풍이 대사증후군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밝히는 연구들이 잇따라 발표되고 있습니다.

미국 연구에 따르면 통풍 환자 중에서 대사증후군을 동반한 비율은 62.8%로, 통풍이 없는 사람의 대사증후군 동반 비율 25.4%의 두 배를 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국내에서는 대사증후군이 있는 젊은 남성은 통풍 위험이 2.4배 높다는 연구 결과도 발표된 적이 있습니다.

그밖에도 통풍과 대사증후군의 연관성을 증명하는 연구가 많이 이뤄지고 있는데, 그 연구를 살펴보면 중요한 공통 키워드를 하나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로 비만입니다.

칼로리는 과잉 섭취하는 반면, 운동이 부족하면 비만이 찾아옵니다. 그러면 통풍의 발병 위험이 증가합니다. 그와 함께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등 대사증후군의 발병 위험도도 높아집니다.

다만 혈중 요산 농도는 비만하지 않을 때도 높아질 수 있습니다. 요산 농도가 높아지면 통풍만 오는 게 아니라 동맥경화증의 위험도도 증가합니다.

그 때문에 혈중 요산 농도가 높은 사람은 고혈압, 고지혈증 등이 없어도 뇌혈관 질환의 발생 위험도가 높다는 연구도 나와 있습니다.

높은 혈중 요산은 동맥경화증을 일으키며, 동맥경화증이 있으면 협심증, 뇌졸중, 만성콩팥병 등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통풍은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등 만성질환이 합병증을 일으키는 것처럼 인체의 혈관과 장기를 망가뜨린다는 것입니다.

통풍을 단지 발가락 등 관절의 통증으로만 봐서는 안 됩니다.

통풍이 왔을 때는 치료와 함께 자신의 몸 상태와 생활 습관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통풍은 비교적 약물 치료가 잘 되므로 치료에 집중해야 합니다.

만약 과체중-비만이 있다면 식습관 조절과 운동으로 체중감량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약으로 혈중 요산 수치만 낮추는 것은 근본 대책이 아닙니다.

통풍 환자가 늘고 있는 배경에는 지난 3년간의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운동 부족과 비만 인구 증가 등이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봅니다.

코로나 팬데믹의 또 다른 ‘청구서’들이 우리에게 날아오기 시작한 것은 아닐지 염려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