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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이상 대학병원과 의원에서 진료하는 동안 우리나라 의료 환경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런데 달라지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교수님, OO이 좋다는데 먹어도 될까요?”라는 환자들의 질문입니다.

오랜 <건강 편지> 독자들께서는 “건강을 위해 뭔가를 더 먹으려 하지 말고, 소금-지방-설탕을 줄이시라”라는 이야기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진료실에서 이 말을 수시로 합니다만, 아직도 몸에 좋은 것을 찾는 환자들이 있습니다.

몸에 좋다는 것에 대한 한국인의 강렬한 집착(?)은 어디서 유래했을까요?

혹자는 민간요법이나 동양 의학에 뿌리가 있다고 설명합니다.

식약동원(食藥同原), 식치(食治), 식료(食療)와 같은 개념은 ‘먹는 것이 치료’라는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일리가 있습니다만, 이것만으로 모두를 설명해주기는 어렵습니다.

저는 6.25 이후 한국인의 독특했던 경험도 그런 사고를 형성하는 데 한몫했다고 봅니다.

우리나라는 구한말부터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서서히 근대의학이 도입되었습니다. 하지만 식민지 시절에 제대로 된 의료체계는 없었습니다.

근대식 의료기관들이 있었으나 숫자가 적었고 그나마도 도시에 집중돼 있어 농어촌이나 도서벽지 주민들은 거의 혜택을 입지 못했습니다. 이는 해방 이후에도 크게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6.25가 발발하고 미군들이 군수물자와 구호품 등으로 의약품을 들여왔습니다.

그중에는 설파계 항생제와 페니실린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가장 유명했던 것이 ‘다이아찡’이란 일본식 발음으로 불렸던 ‘설파계 다이아진’이란 항생제였습니다.

이 약은 폐렴, 임질, 이질, 설사, 부스럼, 종기 등 수많은 감염성 염증 질환에 획기적인 약효를 나타냈습니다.

현대 의학이 채 도입되기도 전에 마법과 같은 신약이 먼저 한국에 상륙했고, 열악한 의료 환경 속에서 살던 한국 사람들에게 몇몇 약은 ‘만병통치약’이란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오랫동안 마땅한 치료법이 없어 생명을 앗아갔거나 고통 속에서 살아왔던 사람들에게 ‘다이아찡’은 그야말로 해결사나 다름없었습니다. 약 한두 알씩 하루, 이틀이면 못 고칠 병이 없다고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인기 좋은 약은 밀수까지 됐다고 합니다.

변변한 의료기관도 없던 시절에 목숨을 구해준 이들은 약은 의료의 상징이었습니다.

그 인상이 얼마나 강렬했던지 현대식 의료기관들이 크게 늘었고, 의료보험이 도입되었으며 의약분업까지 이뤄진 이후에도 한국인의 뇌리에 남아 있습니다.

인간의 행동과 사고에는 교육, 양육방식, 경험 등 다양한 요인들이 영향을 끼칩니다. 가족이나 친지를 통한 간접 경험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지금 70대 이상이신 분 중에는 어릴 때 ‘다이아찡’과 같은 약에 대한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몸이 아플 때 복용해 기가 막히게 나은 경험을 가진 분들도 있겠지요.

그 기억이 남아 있는 사람이라면 “OO을 먹으면 고혈압에 좋다” “△△을 먹으면 당뇨병에 좋다”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듯합니다.

세균이나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질환, 또는 급성질환의 상당수는 현대 의학-의술과 항생제 등의 약물로 치료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고혈압, 당뇨병, 만성콩팥병과 같은 만성질환을 한두 번 투여로 치료할 수 있는 약은 아직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런 약이나 비방(祕方)을 갈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심리를 상술이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만성질환 치료제는 아직 없으므로 필요하면 꾸준히 약을 복용하면서 금연, 절주, 운동, 적정체중 유지, 건강한 식단, 싱겁게 먹기 등을 실천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최선입니다.

먼 미래에는 “2022년에는 고혈압 치료제가 없어서 매일 약을 먹었다더라”라고 말할 날이 올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때까지는 꾸준한 약 복용과 건강한 생활습관 실천이 최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