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

1982년에 서울대병원 신장내과 교수가 된 지 올해로 40년이 되기까지 의료분야에서는 참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중 하나가 만성콩팥병의 원인이 달라진 것입니다.

40년 전 만성콩팥병의 원인 질환 1위는 사구체신염이었고, 2위는 고혈압, 3위가 당뇨병이었습니다. 사구체신염은 압도적 1위였습니다.

사구체신염은 콩팥의 사구체에 염증이 생겨 콩팥이 손상되는 질병을 말합니다. 원인은 바이러스나 세균 감염에 의한 콩팥 손상부터 인체의 면역체계가 콩팥을 공격해서 생기는 면역 이상 질환에 이르기까지 다양합니다.

사구체신염은 콩팥의 사구체에만 국한돼 나타나는 1차성 사구체신염과 전신 질병과 동반되는 2차성 사구체신염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1차성 사구체신염으로는 IgA신증이 있고, 2차성 사구체신염으로는 ‘전신성 홍반성 낭창’이라고도 불리는 루푸스가 있습니다.

1990년대 들어 사구체신염은 만성콩팥병의 원인 1위 자리를 내주고 2위로 내려앉았습니다. 1위에 오른 질환은 바로 고혈압이었습니다.

사구체신염이 줄어들었기 때문이 아니라, 고혈압에 의한 만성콩팥병 발생이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1, 2위가 역전된 것입니다.

1990년대 신장내과 의사들은 환자들을 진료할 때 “혈압 관리 잘 하셔야 됩니다”라는 말을 강조하곤 했습니다. 만성콩팥병 예방을 위해서도 고혈압을 예방, 관리의 중요성을 자주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다 2000년대에 들어 다시 순위가 바뀌었습니다.

당뇨병이 고혈압을 2위로 밀어내고 만성콩팥병 원인 질환 1위에 올랐습니다. 사구체신염은 3위로 한 계단 더 내려앉았지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2018년 자료에 따르면 만성신부전으로 혈액 투석을 받는 환자의 40.8%가 당뇨병 때문이었고, 고혈압은 27.8%로 두 번째였습니다.

만성콩팥병 원인 질환에서 1위 당뇨병, 2위 고혈압, 3위 사구체신염 등의 ‘3강’ 구도는 앞으로 상당 기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당뇨병 환자의 증가 추이 때문입니다.

2021년 우리나라에서 당뇨병으로 치료받은 사람은 330여만 명이었으나, 실제 환자는 500만 명을 넘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30세 이상 성인 7명 중 1명(13.8%)이라는 통계도 있습니다.

더 우려되는 점은 당화혈색소 5.7~6.4%인 당뇨병 전 단계인 사람이 무려 1,497만 명이나 된다는 사실입니다.

당뇨병 환자의 53.2%가 비만인데, 현재의 비만 인구 증가 추이까지 고려하면 앞으로 당뇨병 환자가 계속 증가할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건강 편지>는 지난 2018년 의학저널 ‘란셋’에 발표된 논문을 바탕으로 2040년 한국을 포함한 고소득 아시아태평양 지역 주민들의 수명 단축 원인 5위로 만성콩팥병이 올랐다는 사실을 소개해드린 적이 있습니다. 이 논문에서는 당뇨병도 15위에서 7위로 오를 것으로 예측됐습니다.

만성콩팥병 순위가 2016년 16위에서 24년 만에 5위로 급상승한다는 점 때문에 고개를 갸웃하신 분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당뇨병 환자(제2형) 10명 중 4명이 만성콩팥병을 앓는다는 점과 인구 고령화 등을 종합하면 해가 갈수록 만성콩팥병은 증가할 것으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제2형 당뇨병의 주된 원인은 비만과 노화입니다. 노화는 인위적으로 억제할 수 없으므로, 비만을 예방 치료하는 것이 당뇨병 예방의 최선책입니다.

체중을 20% 줄이거나, 20세 때의 체중으로 되돌리면 당뇨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연구들도 나와 있습니다.

당뇨병 또는 당뇨병 전단계로 진단받았는데, 이 정도로 체중을 줄일 자신이 없으면 약물을 복용해서라도 혈당을 조절해야 합니다.

설령 당뇨병이라고 해도 약물 치료와 함께 운동, 체중조절, 금연과 절주, 건강한 식단, 싱겁게 먹기 등을 열심히 실천하면 만성콩팥병, 당뇨발, 당뇨망막증, 당뇨병성 신경병증 등 합병증 발생을 막거나 늦출 수 있습니다.

당뇨병이란 고리를 끊으면 만성콩팥병 등의 만성질환과 심장-뇌혈관질환 등 수많은 질병과 합병증으로의 진행을 차단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