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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단보도에서 기다리던 사람 중에 신호등이 초록 불로 바뀌기 무섭게 쏜살같은 발걸음으로 건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운전할 때도 비슷합니다. 신호등에서 차선에 멈췄다가 신호가 바뀌면 누구보다 먼저 출발합니다. 불과 1초 정도도 못 기다리는 조급한 성미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이런 습관이 교통사고 위험을 높인다는 것을 알지만, 쉽게 고치지 못합니다.

코로나19(COVID-19)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 수많은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코로나19가 풍토병으로 바뀌어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위드 코로나’가 가시권 안에 들어왔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오미크론에 이어 6번째 우세종 변이가 출현해 팬데믹이 여름에도 이어질 것이란 주장도 나옵니다.

어느 주장이 타당한지 구별이 어렵고 혼란스럽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확진자와 사망자 숫자가 늘어도 많은 사람이 코로나19에서 벗어나 정상으로 돌아갈 날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올여름 해외여행 상품들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고, 국내 여행지에도 발길이 잇따르고 있다고 합니다. 일부 레스토랑은 식사 예약이 꽉 차 있다고 합니다.

이 사람들의 심리는 마치 횡단보도에서 신호등 불빛이 바뀌기만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심정과 비슷해 보입니다.

그렇다면 ‘위드 코로나’ 또는 ‘코로나19의 풍토병화’라는 낙관적 전망에 따라 남들보다 앞서 뛰어나가도 별문제가 없을까요?

아직 팬데믹이란 큰 숲을 지나고 있으며, 언제쯤 확실히 벗어날지 알 수 없으므로 신중한 판단을 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남들보다 한발 앞서가려고 하지 마시고 한발만 늦게 가시라는 뜻입니다.

앞장서서 나가는 사람들이 멋져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100여 년만의 바이러스 감염증 팬데믹에서 벗어나는 일은 1등이나 금-은-동메달을 가리는 시합이 아닙니다.

일상을 회복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나 생업이 달린 분들의 절실함을 모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바이러스 팬데믹에서 고위험을 감수하는 행위는 일상에서 종종 경험하는 ‘위험 감수(risk taking)’와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모든 모험에는 위험이 따릅니다만 바이러스 팬데믹에서 위험 감수는 목숨이 걸린 문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무작정 신중한 태도만을 고집하시라는 의미는 아니며 타인, 세상과 최소한의 보조는 맞추되 한 발쯤만 늦게 움직이시라는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남들보다 한발 늦게 마스크를 벗고, 여행계획을 잡고, 친구나 가족들과 모임을 잡으시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는 데는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습니다.

100여 년 만에 닥친 팬데믹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대중은 준비가 안 된 상태였고, 의사와 과학자들은 백신 개발 등에 몰두하느라 팬데믹 바이러스의 위험성을 대중들에게 설명하고 소통하는데 시간과 노력을 투입할 여력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의학-과학과 개인-대중 간 정보와 인식의 괴리가 컸습니다.

여기서 불안이 싹텄고, 백신에 대한 불신으로 인한 낮은 접종률을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또 SNS 등을 통해 괴담이 전파되는가 하면 무책임한 선동의 목소리가 수시로 터져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런 것들이 겹쳐 최근에는 증상이 나타났는데도 신속 항원 검사 또는 PCR 검사를 기피하는 사람들까지 있다고 합니다.

사회적 거리두기의 장기화로 지친 사람들이 상당히 예민한 반응을 보이기도 합니다.

이런 현상들은 모든 과학-의학의 발견이나 업적을 대중이 받아들이기까지 많은, 아니 굉장한 괴리가 존재함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습니다.

의사와 과학자들이 전염력이 너무 빠른 바이러스에 대한 해법을 찾는데 몰두하느라 대중 소통(public communication)에 충분한 시간과 노력을 쓰지 못했던 것도 이런 괴리를 초래한 원인이 되었습니다.

바이러스의 돌연변이, 바이러스 감염증에 대한 대중의 반응 모두 예측이 어렵습니다.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팬데믹의 매우 뚜렷한 특징이 ‘불투명성’입니다.

희망을 지녀야 하겠습니다만, 최대한 신중하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