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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맥주처럼 보이는 소변은 물을 많이 마신 뒤에는 색이 옅어지고, 적게 마시면 진하게 변합니다. 또 비타민이나 특정 성분의 약을 먹을 때도 소변 색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문제는 경험해본 적이 없는 특이한 색깔의 소변이 나올 때입니다.

그러면 “혈뇨가 나타난 걸 보니 큰 병에 걸렸나 보다”라고 충격에 빠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얼핏 보면 혈뇨 같으나 혈뇨가 아닌 것들이 있습니다.

첫째 진한 주황색 소변입니다.

환자들의 표현을 들어보면 “소변이 노리끼리한데 노랗다기보다는 붉은 기운이 돈다”라는 것입니다.

이는 얼굴에 황달이 있을 때 흔히 나타나는 소변입니다.

소변이 주황색으로 보이는 이유는 적혈구의 부산물 때문입니다.

혈액 속 적혈구의 수명은 약 120일(4개월)입니다. 수명을 다한 적혈구의 헤모글로빈이 분해될 때 황갈색 물질 ‘빌리루빈’이 만들어집니다. 빌리루빈 일부는 쓸개즙을 만들 때 사용되며, 나머지는 담도를 거쳐 십이지장, 대장으로 흘러가 대변에 섞여 배출됩니다.

대변이 갈색~노란색인 이유는 빌리루빈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빌리루빈은 소변을 통해서도 약간 배출되는데 이것이 소변 색을 맥주처럼 보이게 합니다.

그런데 간에 질환이 생겼거나 담도가 막혀 빌리루빈이 십이지장으로 빠져나가지 못하면 간에서 혈액을 거쳐 우리 몸의 황달로 나타나고, 이 혈액에 축적된 빌리루빈은 소변으로 배출됩니다. 빌리루빈이 과도하게 든 소변은 진한 주황색이 됩니다.

진한 주황색 소변이 과도한 빌리루빈 때문인지를 확인하려면 대변을 살펴보면 됩니다. 빌리루빈이 십이지장과 대장으로 빠져나가지 못하면 대변 색이 희게 변합니다.

둘째는 과도한 운동 후에 나오는 콜라색 또는 홍차색 소변입니다. 혈뇨처럼 보여 진료받으러 오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때 콜라색 소변의 원인은 혈액이 아니라 근육을 구성하는 물질입니다. 이를 미오글로빈이라고 합니다.

소고기나 돼지고기 살코기를 보면 붉게 보이는데, 근육 속에 미오글로빈 성분 때문입니다. 사람의 근육 속에도 미오글로빈이 많이 들어 있습니다.

갑자기 과격한 운동을 하면 근육이 손상되고 근육 속 미오글로빈이 빠져나와 소변으로 배출되는 것을 횡문근 융해증이라고 합니다.

횡문근 융해증이 있을 때 소변 색은 혈뇨와 구별하기가 쉽지 않아 흔히 혈뇨로 오인되기도 합니다.

이처럼 소변 색깔은 우리 몸 내부의 상황을 반영해주는 징표입니다. 요즘은 영상의학 장비와 진단검사법 발달로 피부를 절개하지 않고도 몸 안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상당히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장비가 없었고, 피를 뽑을 줄도 몰랐던 시대에는 몸 안의 상태를 추정할 수 있게 해주는 수단은 소변뿐이었습니다. 즉, 소변은 우리 몸의 다양한 변화를 관찰할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창이었습니다.

그래서 고대 이집트 시절부터 소변 색깔은 진단에 다양하게 활용되었습니다. 그 당시 의사들이 소변의 색깔, 특히 혈뇨에 관심을 가진 이유가 있었습니다.

첫째 이집트에는 말라리아 감염이 많았습니다. 말라리아에 걸리면 혈액 속 적혈구가 깨져 혈뇨가 나옵니다.

둘째 기생충 감염도 혈뇨의 원인입니다. 아프리카나 중동지방의 강물이나 호수 등에서 수영할 때 기생충에 감염될 수 있습니다. 기생충이 방광에서 출혈을 일으키면 혈뇨가 나옵니다.

셋째 북아프리카의 더운 날씨로 인해 요로결석이 잘 생기고, 이것이 혈뇨를 초래합니다.

소변 색깔을 이용하는 이런 진단법은 아라비아를 거쳐 중세 유럽으로 전해져 ‘유로스코피(uroscopy)’라는 학문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현대 의학에서 보면 정확도는 좀 떨어집니다만, 유로스코피는 32가지 소변 색깔과 소변의 혼탁도 등을 이용한 진단법으로 꽤 오랫동안 활용되었습니다.

유로스코피를 통해 축적된 혈뇨에 대한 경험들이 현대 의학에서 사용되는 ‘소변 검사’의 뿌리가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인터넷 사이트에 ‘The color of pee(소변의 색깔)’을 검색하면 외국의 유명 대학병원이 만든 소변 색깔을 이용한 간이 진단법이 소개돼 있습니다.

혈뇨의 원인, 혈뇨와 혈뇨 아닌 것을 구별할 줄 아는 우리의 지식도 동서양의 수많은 의사와 과학자들의 진단 경험과 연구 결과에서 나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