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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A씨가 처음 서울K내과에 진료받으러 왔을 때 공복 혈당 수치는 386mg/dL이었습니다. 당뇨병 진단 기준인 공복 혈당 126mg/dL을 많이 넘었고, 당화혈색소는 13%로 기준치(5.9% 이하)의 2배 이상이었습니다. 당뇨병이었습니다.

총콜레스테롤은 388mg/dL로 기준(130~220mg/dL)을 1.8배, 중성지방은 1290mg/dL로 기준(40~155mg/dL)보다 8배 이상 높은 고지혈증이었습니다.

처음 검사에서 콩팥 사구체여과율이 141mL/분으로 나왔는데, 다음 검사에서는 160mL/분까지 높게 나오기도 했습니다. 사구체여과율은 90mL/분 이상이 정상인데, 건강한 20~30대는 110~120mL/분으로 나오기도 합니다.

그럼 140mL/분이 나오면 더 좋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 상태는 콩팥이 일을 너무 많이 한다, 즉 과로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콩팥이 망가져 만성콩팥병으로 악화될 수도 있습니다.

진료실 의자에 앉은 A씨는 화가 난 상태였습니다.

최근의 건강 편지에서 말씀드린 대로 암이나 중증 질환을 진단받았을 때 반응인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 중 ‘분노’ 단계에 있는 듯했습니다.

대화를 통해 분노의 이유를 어느 정도 추정할 수 있었습니다.

비만이었던 그는 체중이 어느 날부터 줄고 심한 피로 증상 등을 느껴 병원을 찾아 진료받은 결과 당뇨병으로 진단됐다고 했습니다.

서울K내과를 찾기 전 이미 병원을 두세 군데 이상 다니면서 당뇨병 약 처방도 받았지만 약을 제대로 먹지 않았다고도 했습니다.

A씨 주장의 요지는 ‘의사가 약을 잘못 처방했기 때문에 약을 먹지 않았고 당뇨병이 더 악화됐다’는 것이었습니다.

대학병원에서부터 지금까지 40여 년 동안 진료해온 경험으로 볼 때 A씨 같은 사례는 진료가 상당히 까다로운 환자에 속합니다.

그의 심정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는 있습니다. 아직 젊은 나이에 당뇨병 진단을 받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고, 감정도 무척 예민한 상태였습니다.

환자를 치료하려면 우선 환자와 마음이 통해야 하는데, 환자는 마음의 장벽을 높게 쌓고 있으니 난감합니다. 좋은 말도 환자의 마음에 닿지 않습니다.

방법이 없지는 않습니다. 처음부터 강하게 말하면 역효과가 나므로 ‘쿨’한 태도가 낫습니다. 그에게 약 처방과 함께 생활 습관 교정 요령을 알려주면서 “시간이 약이라고 생각하셔야 된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마음이 통했을까요? 일주일 뒤 드는 다시 병원을 찾았고 검사 결과 공복 혈당은 300mg/dL로 낮아졌습니다. 그 이후 250mg/dL, 200mg/dL로 계속 떨어졌습니다.

검사 결과는 A씨가 약을 잘 먹고 있으며, 운동과 식사요법 등 생활습관 교정도 비교적 성실하게 실천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A씨를 실천으로 이끈 동력은 ‘몸의 변화를 수치로 확인하는 것’이었습니다.

환자들이 의사의 지시를 잘 따르지 않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주된 요인은 노력했는데도 변화를 실감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의사가 하라는 대로 했는데도 달라지는 게 없으니 의사 말을 불신하게 되는 것이지요. 따라서 의사가 환자의 신뢰를 얻고 원하는 치료 결과를 내기 위해서는 최대한 빨리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변화를 이끌어내야 합니다.

혈당, 혈압, 사구체여과율, 간 수치 등 숫자로 나타낼 수 있는 것이라야 효과적입니다. ‘비포(before)-애프터(after)’를 쉽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다음 진료 예약일에 병원에 나타나지 않는 환자들도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A씨는 꾸준히 진료를 받으러 왔고, 시간이 지날수록 각종 수치는 눈에 띄게 호전되고 있습니다.

그의 공복 혈당은 최근에는 120mg/dL 수준까지 떨어졌고, 콜레스테롤과 사구체여과율도 정상 수준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A씨의 자신감 회복입니다.

당뇨병은 완치라는 개념을 적용하기가 어렵습니다. 그 대신 혈당을 정상 범위로 조절하면서 평생 살아가는 것이 치료입니다. 이를 위해 중요한 것이 적정 체중 유지, 운동, 식사요법, 스트레스 관리, 약 복용, 금연, 절주 등입니다.

이처럼 혈당을 잘 관리하면 당뇨병 합병증 발생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당뇨병 진단을 받아도 친구만큼 살 수 있게 됩니다.

이를 잘 알고 평생 실천해 나가도록 돕는 게 의사의 역할입니다. 환자가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의사의 노하우이기도 합니다.

A씨는 환자와 의사의 마음이 통하고 믿음이 생기면 치료가 잘 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게 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