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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는 환자가 키운다”는 말이 있습니다.

의사를 교육하고 훈련하는 일은 의대 교수와 선배들의 몫입니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의사는 환자로부터 많은 것을 배웁니다.

의사는 환자를 보면서 의학 교과서에서 배운 내용을 직접 확인합니다. 때로는 교과서에 없는 것을 만나면 해결책을 찾으려 노력하고 고민도 합니다.

현대의 의학 의술은 인류의 의학 선배들이 환자로부터 배운 모든 경험과 지식, 지혜라는 바탕 위에 서 있습니다.

의사가 환자들로부터 많이 배우려면 인턴, 레지던트를 포함한 초보 의사들이 환자를 많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어 다양한 경험을 쌓게 해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유능한 의사로 커나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환자들로서는 명의에게 진료받고 싶지, 아직 경험이 얕은 의사에게 진료받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문제는 계속 이렇게 가면 미래의 명의 탄생은 점점 더 기대하기가 어려워진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딜레마를 빗대 서양 의료계에는 “노벨의학상을 받은 의사는 훌륭한 제자를 배출하기 어렵다”는 말도 있습니다.

명의 스승 아래의 제자는 명의가 되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젊은 의사들에게 치료 기회를 많이 주려면 의료기관과 선배 의사들은 물론, 환자들의 동참도 필요합니다.

젊은 의사들에게 환자 진료 기회를 많이 주면서도, 환자들에게 불이익이 돌아가지 않도록 의료 시스템을 개선해야 하는 것은 물론입니다.

좋은 의사를 키우는 위해서는 좀 더 근본적인 문제의 해법도 찾아야 합니다. 그중 하나가 전공의 수급 왜곡 현상을 고치는 일입니다.

혹시 ‘내외산소’라는 말을 들어보셨는지요?

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의 첫 글자만 따서 만든 일종의 ‘조어(造語)’입니다. 이 4개 과는 의학-의료의 전통적인 기본 과목으로, 의대 수업 시간에서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과거 오랫동안 ‘내외산소’는 인기과였습니다.

하지만 10~20년 전부터 내외산소의 인기가 줄기 시작해 지금은 위기 수준입니다.

작년 전공의 모집 때의 경쟁률을 보면 소아청소년과는 0.29대1에 불과했고, 산부인과는 0.76대1, 외과도 0.79대1에 그쳐 모집정원을 채우지 못했습니다.

한때 미달이던 내과는 요즘은 모집정원을 넘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내과 전공의 모집정원이 줄었고, 전공의 수련 기간을 4년에서 3년으로 단축하는 등의 변수도 있으므로 근원적으로 문제가 해결됐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실력 있는 의사와 효율적인 의료 시스템으로 탄탄한 의료의 기본을 갖춘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 간에는 어떤 차이가 있었는지 코로나19(COVID-19) 팬데믹이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는 전염병뿐 아니라 난치성 만성질환 치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전문의 수급이 제대로 되지 않는 현상이 장기간 이어진다면 실력 있는 의사, 능률적인 의료 시스템을 구축하기가 어려워지고 그 피해는 결국 환자, 국민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습니다.

젊은 의사들이 돈벌이만 쫓는다고 비난하기에 앞서 왜 내외산소가 외면받고 있는지 살펴보고 개선 방향을 찾아야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환자로서 병원을 찾을 때나, 자녀가 대학에 진학할 때 외에는 의료 시스템에 별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물론 의사 양성과 의료 시스템 개선은 의료인이나 정책 담당자들의 책무이기는 합니다.

다만 어떤 의사들이 어떻게 선발돼 훈련되는지에 대해 대중들도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때로는 의견을 표명할 필요도 있습니다. 의사들이 나와 내 가족의 질병 예방, 치료, 방역 등을 맡기 때문입니다.

‘명의는 명품 의사’라고 풀 수도 있습니다.

명품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듯이 명의도 쉽게 배출되지 않습니다. 명품은 소유자에게 기쁨을 주지만, 명의는 세상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듭니다.

환자 진료를 잘하면서, 연구도 잘하는 의사, 품성까지 좋은 의사는 사회의 소중한 자산(資産)입니다.

환자들도 동참하면 좋은 의사를 많이 키울 수 있으며, 그 혜택이 환자와 사회로 돌아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