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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김성권 박사의 건강편지 - 256
작성일자 2021-11-22
슬픔 치유의 최고 단계는 ‘기부’ 또는 ‘후원’


코로나19(COVID-19) 국내 사망자가 3000명을 넘었습니다. 백신 접종 후 사망하거나, 사경을 헤매고 있는 사람들의 안타깝고 슬픈 사연도 잇따라 전해지고 있습니다.

희생자들이 많은 미국이나 유럽 등에서는 가족을 잃은 사람들에 대한 ‘치유’ 방법도 진지하게 모색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회적 거리두기와 백신 접종 등을 통한 방역에 치중하느라 희생자 가족에 대한 배려와 지원은 상대적으로 소홀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최근 미국 등에서 거론되고 있는 ‘슬픔의 6단계’ 논의는 주목할 만합니다.

죽음과 같은 큰 슬픔을 겪는 인간의 대응 방식에 대한 설명 중에서 유명한 것이 ‘슬픔의 5단계(Five stages of grief)’ 이론입니다.

이는 미국 심리학자 퀴블로 로스가 1969년 발표한 책 ‘죽음과 죽어가는 것에 대하여’에서 처음 소개되었습니다. 인간은 죽음이나 가족의 사망에 대해 5단계의 과정을 거친다는 설명입니다.

처음에는 그 사실을 부정(denial)하고, 다음 분노(anger)한 뒤 타협(bargaining), 우울(depression)을 거쳐 수용(acceptance)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이 이론은 처음에는 죽음에 대한 설명으로 제시되었으나, 이후에는 암, 만성신부전, 심장-뇌 질환 등 중증 질환을 진단받았을 때도 적용하고 있습니다.

부정은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에 부딪혔을 때의 첫 반응입니다.

상황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지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건강함을 증명합니다.

분노 역시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왜 하필 나에게?”라는 격렬한 반응도 보입니다. 분노는 고통을 표현하는 또 하나의 방식입니다.

슬픔을 겪은 사람들의 분노에는 절망감, 죄책감, 무력감 등이 숨어 있는데, 주의해야 할 것은 죄책감입니다. 마치 자신 때문에 가족이 희생된 것처럼 심한 죄책감에 시달리면 더 큰 불행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극도의 슬픔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건강한 방식으로 화를 낼 수 있게 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분노는 차 안에서 소리 지르기나, 헬스클럽에서 샌드백을 때리거나 숨이 찰 정도로 운동을 하는 등의 방식으로 표출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아무리 큰 고통이나 슬픔도 시간이 흐르면 언젠가 타협하게 됩니다. 최선의 노력을 다하더라도 세상에는 불행한 일, 나쁜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타협 뒤에는 우울증이 밀려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데서 오는 크나큰 슬픔이 영원히 지속될 것 같고, 가족을 잃고 나 혼자 세상을 살만한 가치가 있을까 싶은 부정적인 생각에 빠지기도 합니다.

우울증은 충격이 지난 뒤 1년 뒤에 올 수도 있고, 3년 뒤에 올 수도 있습니다. 아무도 그 시점은 모릅니다.

이런 단계들을 거쳐 마지막으로 슬픔을 수용합니다. 받아들인다고 해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는 것은 아니며, 사랑하는 사람이 없는 또 다른 세상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스윗 소로우(Sweet sorrow)’라는 말이 있습니다. ‘달콤한 슬픔’으로 오역하기도 하는데, 실은 ‘슬픔을 겪고 난 뒤 끊임없이 온전함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의미입니다. 슬픔을 다 극복할 순 없어도 끊임없이 치유해나가는 행위가 수용입니다.

과거에는 이 5단계로만 설명했습니다만, 최근 여기에 하나를 더해 6단계로 설명하는 시도들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수용’ 다음에 ‘의미 찾기’라는 단계를 두려는 것입니다. 이는 ‘승화’로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전염병에 의한 갑작스러운 사망은 허무하고 헛된 죽음으로 인식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죽음의 의미를 찾는 일이 살아남는 사람들의 몫이 된다는 것이 6단계의 의미입니다.

‘승화’의 사례들이 있습니다. 바로 부모나 자식을 질병으로 잃고 두 번 다시 같은 질병으로 죽는 사람들이 나오지 않도록 재산을 대학, 병원, 연구소 등에 기부 또는 후원하는 것입니다. 기부금-후원금으로 연구해 신약과 치료법, 질병 예방법 등을 개발한 사례는 부지기수입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큰 고통을 안겨주고 있지만, 이를 극복해나가는 과정에서 인류는 더 성숙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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