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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김성권 박사의 건강편지 - 251
작성일자 2021-10-18
지방간 있으면 환자가 덜 섭섭한 이유


몸이 이상이 있어 병-의원에 가면 의사의 진찰 후에 혈액-소변검사에 X선 촬영, 초음파 검사 등 검사를 받곤 합니다. 그런데 이런 과정을 거쳤는데도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진단 결과가 ‘깨끗한 상태’인 것이지요.

여기에는 두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습니다.

첫째 환자는 통증이나 불편을 느꼈지만 치료가 필요할 정도의 원인이 없는 것입니다. 특별한 원인이 없어도 일시적으로 통증 등의 이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스트레스가 원인이 돼서 발생하는 심인성(心因性) 질환들도 있는데, 그 원인이 줄거나 사라지면 통증이나 불편이 자연스럽게 없어지기도 합니다.

둘째 의사가 몸에 나타난 이상의 원인을 찾아내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100% 정확한 진단은 어렵습니다. 진단의 정확도를 높이는 일은 의사들의 영원한 숙제입니다.

아무튼 ‘깨끗한 진단 결과표’가 나오면 적어도 몸에 큰 이상은 없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은 분명합니다. 이러면 환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어야 할텐데 현실은 그렇지 않을 때도 적지 않습니다.

몸에 이상을 느꼈고 시간과 비용을 들여 진료를 받았는데 ‘이상이 없다’는 결과를 들으면 ‘왠지 손해본 것같다’는 느낌이 든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속된 표현으로 ‘본전 생각이 난다’는 것입니다.

큰 문제가 없음을 확인했으면 감사해야 할 상황인데, 오히려 섭섭한 마음이 든다는 것은 인간 심리의 미묘한 이중성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례를 겪다 보면 의사들은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진단 결과가 깨끗한 것을 환자가 좋아하거나 감사한 마음을 갖기는커녕 서운한 표정을 짓거나, 혹시 오진은 아닐까 의혹의 눈길을 보낸다면 의사로서는 무척이나 곤혹스럽습니다.

검사 결과 뭐라도 이상이 발견돼야 오히려 “내가 병원을 찾기를 잘했구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해주는 게 최선일까요?

몇 년 전 의사들의 모임에서 이구동성으로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말하면서 한 참석자가 자신만의 묘안을 제시했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그는 검사 결과 이상이 발견되지 않을 때 환자에게 “큰 이상은 없지만 비알코올성 지방간이 의심되네요. 체중을 줄이시는 게 좋겠습니다”라고 말해준다고 했습니다.

지방간은 과거에는 대부분 ‘알코올성 지방간’이었습니다. 간세포의 지방 비율이 5%를 넘는 것을 지방간이라고 하는데 가장 주된 원인이 술 때문이라 그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하지만 근래에 들어서는 술을 마시지 않는데도 지방간이 있는 사람들이 크게 늘고 있습니다. 이를 ‘비알코올성 지방간’이라고 합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자료에 따르면 2020년 비알코올성 지방간으로 치료받은 사람은 10만7300여 명으로 5년 전보다 약 3배 늘었습니다.

칼로리가 높은 음식을 과잉 섭취하고 비만 인구가 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원인입니다. 과체중, 비만인 사람들의 간을 초음파로 검사해보면, 지방간이 확인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알코올성 간 질환’은 감소하고 있습니다. 심평원에 따르면 2020년 알코올성 간질환은 11만2600여 명으로 5년 전보다 약 12.8% 줄었습니다.

이 통계에는 알코올성 지방간 외에 다른 간 질환도 포함돼 있긴 합니다만 알코올에 의한 간 질환은 조금씩이나마 줄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이와 비교하면 비알코올성 지방간의 증가 속도가 너무 빠릅니다.

비알코올성 지방간은 일부가 지방간염을 거쳐 간경변증으로 악화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큰 문제를 일으키진 않습니다.

문제는 비알코올성 지방간을 초래한 원인인 과체중이나 비만이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만성콩팥병, 통풍 등 만성 질환들의 발생 가능성을 높인다는 사실입니다. 즉 비알코올성 지방간만 있을 뿐 현재로서는 별 다른 이상은 없는 사람도 고혈압 등 만성질환의 발병 위험이 높습니다.

또다른 문제는 알코올성 지방간은 주로 성인 남성들의 문제였다면, 비알코올성 지방간은 여성들이나 청소년들에게도 두루 나타난다는 점입니다.

음주 비율이 낮은 여성이나 청소년들은 지방간을 포함한 간 질환의 발병 가능성에 둔감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 때문에 비알코올성 지방간을 오래 방치했다가 뒤늦게 진단받는 사례들도 생기고 있습니다.

비알코올성 지방간은 병원에서 검사를 받고도 깨끗한 환자들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말해줄 정도로 ‘병 같지 않은 병’처럼 보이지만, 언젠가 대사증후군의 한 지표가 되거나 주요 질환의 하나가 될 날이 올 수도 있겠습니다.

혹시 비알코올성 지방간이라는 말을 의사로부터 들은 독자가 계신다면, 오늘부터라도 체중조절에 적극 나서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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