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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김성권 박사의 건강편지 - 249
작성일자 2021-10-04
내가 받은 치료에 숨은 의학사적 의미


A씨(45)는 건강검진에서 단백뇨와 혈뇨가 있다는 결과를 통보받았습니다. 가까운 병원에서 추가 검사를 받았지만 원인이 뚜렷하지 않았고, 의사로부터 대학병원에 가보라는 소견을 받았다고 합니다.

A씨에 대해 2회에 걸쳐 혈액과 소변검사, 초음파 검사 등을 통해 호두까기증후군으로 최종 진단했습니다.

왼쪽 콩팥의 정맥이 대동맥과 상장간동맥 사이 Y자 모양의 공간을 지날 때 눌려서 콩팥에 과도하게 압력이 가해짐에 따라 단백뇨, 혈뇨 등이 나타나는 것이 호두까기증후군입니다. 호두까기증후군을 확진하려면 초음파 검사가 필수적이라 노련한 영상의학 전문의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세계초음파의학회 회장인 김승협 서울대 명예교수가 함께 진료하기 시작한 뒤로 콩팥의 구조 이상을 진단하는 영상의학 전문의와 기능 이상을 진단하는 신장내과 전문의의 협진이 매우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근심이 가득했던 A씨에게 “호두까기증후군이며, 왼쪽으로 누워서 잠을 자고, 체중을 조금 늘리는 등의 생활습관 변경으로 호전될 것”이라고 말해주자 표정이 밝아졌습니다.

A씨 사례는 일주일에도 몇 건씩 있을 정도로 흔한 일입니다만, 이같은 진단이 가능하기까지 의학을 개척한 수많은 의학자와 의사, 과학자들의 수고와 헌신이 있었음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단백뇨, 혈뇨, 부종은 2000년 전부터 알려져 있었지만 원인은 모른 채 긴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러다 1836년 영국의 내과의사 리처드 브라이트가 단백뇨와 부종이 콩팥 이상 때문이라는 것을 부검으로 규명했습니다. 브라이트의 이론이 콩팥 조직 검사를 통해 정확하게 증명되기까지는 또 다시 100여 년이 더 흘렀습니다.

1940년대에 들어 사망한 사람의 콩팥을 조직 검사해 사구체 신염이 밝혀졌고, 추가 연구를 통해 1950년대에는 사구체 신염이란 진단명이 정립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때까지도 사후 조직검사가 이뤄졌습니다.

살아 있는 사람의 콩팥을 조직 검사(생검)해 사구체 신염을 확진할 수 있게 된 것은 1960년대에 들어와서였습니다. 중요한 콩팥병 진단법의 역사가 50년 남짓밖에 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오랜 의학의 역사가 담겨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단백뇨와 혈뇨와 함께 부종을 알기 시작한 2000여 년 동안 의학적, 과학적 연구는 큰 진전이 없다가 지난 200여 년 간의 눈부신 과학, 의학 발전에 힘입어 근현대 의학의 많은 진단과 치료법이 확립되었습니다.

의학사의 큰 발전은 위대한 의학자, 과학자들의 업적 덕분인 경우가 많습니다. 파스퇴르의 세균 발견은 전염병 퇴치의 길을 열었고, 마리 퀴리의 방사성 원소 발견에 힘입어 X선 등 영상의학 장비가 발전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업적이 나오기 전에도 의사들은 환자를 치료했습니다. 앞서 설명드린 사구체 신염의 발병 기전을 잘 몰랐던 시절에도 의사들은 단백뇨, 혈뇨, 부종 환자들을 치료했습니다.

질병을 상세하게 알기 전이라 치료의 정확도는 다소 떨어졌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의사는 인체와 질병에 대해 잘 모르거나, 치료약이 없는 경우에도 아픈 사람을 치료했고 지금도 그런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백혈병 치료제는 처음 나왔을 때 큰 주목을 받았지만, 정상 세포의 손상이 너무 많아 백혈병은 치료됐으나 환자는 사상에 이르러 치료의 실효성이 없다는 반론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의사들은 이 약을 이용한 치료법 연구에 몰두한 끝에 이제는 백혈병 치료 성공률과 환자의 생존률이 획기적으로 높아졌습니다.

코로나19(COVID­19)도 치료제는 없지만 확진자들을 ‘치료’합니다.

이는 임상 치료 경험의 축적 덕분입니다.

현대 의학은 인류가 수천 년 동안 쌓아온 임상 치료 경험을 바탕에 두고 있습니다. 고열 환자에게 열을 내리는 것, 결핵 환자에게 햇볕을 쬐게 하는 것 등은 확실한 의학적 증거들이 제시되기 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현재 의료기관에서 이뤄지는 진료 행위에는 근­현대 의학의 역사가 농축돼 있습니다. 혈액검사나 소변검사법도 숱한 의학자, 과학자, 의사들이 흘린 땀의 결정체입니다.

현대 의학과 의술이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인류는 물론 질병, 바이러스 등에 대해서도 모르는 부분이 적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의사들은 오랫동안 질병을 치료하고 세균과 바이러스를 물리치면서 경험을 축적해왔습니다. 그 바탕에서 앞으로 신종 또는 난치성 질환을 하나둘씩 해결해나갈 것입니다.

여러분이 진료 받을 때 비록 의사의 진료 시간이 짧더라도 그 안에는 수천 년, 또는 수백~수십 년의 의학과 의술의 역사가 압축돼 있음을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현대 의학이 있기까지 오랫동안 의학과 의술을 한걸음씩 발전시켜온 선현과 선배들에게 저는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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