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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김성권 박사의 건강편지 - 247
작성일자 2021-09-23
성실한 삶이 존엄한 죽음의 준비


대학병원 교수로부터 지금까지 40년 동안 진료하면서 직간접으로 환자의 죽음을 겪은 사례는 아마도 수천 건을 넘을 것입니다. 죽음의 유형은 백인백색이라고 할 만큼 다양했습니다.

한 노스님을 만났던 기억이 납니다. 고령으로 건강이 좋지 않았던 스님은 삶의 마지막 순간을 준비하시는 듯이 보였습니다. 대화 중에 ‘이 분은 삶과 죽음을 구별하지 않으시는 것같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삶과 죽음을 나누지 않으니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을 리 없고, 삶에 대한 집착도 없다는 점이 느껴졌습니다.

그렇다면 고승과 같은 높은 경지에 오른 종교인만 삶과 죽음이 같은 선 위에 있을까요?

고승과 차원은 다르지만 평범한 사람들도 생전의 삶과 죽음은 기본적으로 같은 연장선상에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삶과 죽음 뿐 아니라, 생로병사(生老病死)가 다 연장선 위에 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같습니다.

A씨는 치열한 삶을 살았습니다. 사업으로 크게 성공했고, 인간관계의 폭도 넓어서 언젠가 정치인의 길을 걸을지도 모른다는 평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치열하게 사는 동안 건강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고, 급성 심근경색증으로 쓰러져 병원에 온 뒤 불과 몇 달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입원 중에도 사업을 챙기느라 바빴고 조바심으로 가족과 의료진을 들볶기도 했습니다. 치열하게 살다가 치열하게 숨졌다는 말 외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는 경우였습니다.

죽음의 거론이 금기였던 시절도 있지만 요즘은 웰다잉(well dying)이란 말이 자연스레 쓰이고 있습니다. 웰다잉의 기본은 ‘잘 준비된 존엄한 죽음’이란 의미입니다만, 삶과 죽음이 같은 선 위에 있다는 점에서 죽음을 성찰하면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고 봅니다.

혹시 독자 여러분은 자신의 죽음이 어떨지 궁금하신가요? 수 년 또는 수십 년 뒤에 찾아올 죽음을 예상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합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여러분의 삶을 길게 이으면 그 끝에 죽음이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국내외 장수촌 연구들을 살펴보면, 장수하는 노인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몸을 많이 움직이고, 긍정적이며 대체로 배우자와 함께 살며, 인간관계를 잘 맺고 있습니다. 또한 소박한 음식을 조금 먹습니다.

이 분들의 인터뷰를 보면 죽음을 특별히 두려워하지 않으며, 삶에 대한 과도한 애착도 없습니다.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살 뿐 죽음을 의식하지도, 걱정하지도 않습니다. 고승(高僧)의 사생관(死生觀)과 비슷한 인생철학을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일상의 삶을 성실, 정직, 소박하게 살아가는 것이 장수의 지름길이며, 웰다잉의 기본 조건이 된다는 사실을 장수인들에 대한 연구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생물학적 죽음은 심장이 멎고 온 몸의 기관이 정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죽음보다 훨씬 오래 전에 우리 몸에는 사인이 나타납니다. 노안이나 난청과 같은 것들입니다.

40대 초중반에 찾아오는 노안에 대한 태도를 보면, 나중에 그 사람이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추정할 수 있습니다.

30여 년 전의 경험담입니다. 서울의대 선배 교수의 연구실에 찾아가 노크를 하고 잠시 뒤 방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선배께서 뭔가를 급히 서랍에 숨기면서 당황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속으로 ‘점잖은 선배가 야한 잡지라도 봤나’ 싶었지만 물어보지는 않았습니다. 세월이 한참 지나 그 이야기를 했을 때 그 선배는 사실은 돋보기를 숨겼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책을 볼 때 돋보기를 쓴다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시력과 청력 저하 등으로 나타나는 노화 현상은 미리 찾아온 ‘작은 죽음’일 수도 있습니다. 이를 받아들이는 방식은 나중에 찾아올 ‘큰 죽음’을 대하는 방식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웰다잉을 위해 뭘 준비해야 할까 고민하시는 분이 있다면,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사는 것이 존엄한 죽음을 맞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말씀드립니다.

오랫동안 의료 현장에서 지켜본 경험에 의하면 일생을 성실하게 살아온 분들이 존엄한 죽음을 맞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성실한 삶에는 근면, 겸손, 정직 등의 여러 덕목이 필요합니다만, 건강을 위한 노력도 당연히 포함됩니다. 자신의 몸을 함부로 다루면 존엄한 죽음을 맞기가 어려워집니다.

제가 늘 말씀드리는 금연, 절주, 운동, 적정 체중유지, 건강한 식단, 싱겁게 먹기를 잘 지키는 것은 성실한 삶과 존엄한 죽음의 바탕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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