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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건강편지(백신과 손오공의 분신술)을 읽은 독자께서 “백신 접종 후에 고열 등의 증상이 전혀 없었는데, 면역이 안 생기면 어쩌나 걱정된다”는 의견을 보내주셨습니다.

백신 주사를 맞은 뒤 이상 반응이나 경미한 부작용도 없었으니 항체가 생기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염려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왜 그런지 말씀드리겠습니다.

바이러스나 세균이 몸 안에 들어오면 맨 먼저 정보를 탐색하는 수문장(세포)들이 출동합니다. 이들은 침입한 바이러스나 세균이 과거 몸에 들어왔던 적이 있는지, 성질이 어떤지 등을 파악합니다. 바이러스나 세균에는 인체의 세포와 결합하는 부위(자물쇠)가 있는데 이에 맞는 열쇠가 어떤 지도 확인합니다.

만약 과거에 들어왔던 바이러스나 세균이라면 그 때 만들어진 면역 세포를 출동시켜 맞서게 합니다.

하지만 처음 들어온 바이러스나 세균이라면 그에 맞는 새 면역 세포와 항체를 만듭니다.

면역 시스템은 수문장들이 수집한 바이러스나 세균에 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임시 면역’을 만들어 대응하면서 5~10일 쯤 지나 ‘특이 면역’을 형성합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백신 주사 후 2주쯤 지나야 항체가 제대로 형성된다고 봅니다.

초기 면역 반응은 일어나도 못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 면역 시스템이 바이러스나 세균들과 싸움을 벌여 실감할 수 있는 순간이 오는데, 바로 염증 반응입니다.

염증은 면역 세포와 면역글로불린 등이 인터페론, 콕스2, 보체(complement) 등 다양한 화학전달 물질의 지원을 받아 바이러스, 세균과 싸울 때 생깁니다. 염증이 생기면 열, 붓기, 통증 등 다양한 증상들이 나타납니다.

그런데 염증이 생기는 양상과 강도는 천차만별입니다. 예를 들어 감기로 인후염이 생겼을 때 고열이 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미열도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꽃가루가 호흡기에 들어오자마자 비염을 일으키는 사람도 있고, 아무렇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90대 초반 A씨는 건강합니다. 고혈압이나 당뇨병도 없고, 콩팥 기능은 40대 수준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 의자에서 혼자 일어서기 힘들만큼 기운이 없다면서 가족의 부축을 받아 진료를 받으러왔습니다.

검사 결과는 대부분 정상이었으나, 염증 수치가 13mg/dL로 정상 범위(0~0.3mg/dL)를 훌쩍 벗어나 있었습니다. 증상을 종합할 때 방광염이 의심돼 항생제를 처방하고 다시 진료 받으러 오라고 했습니다. 사흘 뒤 염증 수치는 6mg/dL, 일주일 뒤에는 0.9mg/dL까지 내려갔습니다.

방광염을 포함한 요로감염의 증상은 발열, 하복부 통증, 배뇨통, 절박뇨 등 다양합니다. 세균(주로 대장균)과 면역 시스템이 싸우는 과정에서 나타난 염증 때문에 생기는 증상들입니다.

세균과 면역 시스템 간의 전투가 소규모 국지전이 아니라 대규모 전면전으로 비화되면 우리가 쉽게 느끼거나 눈으로 볼 수 있는 증상들이 나타납니다. 눈으로 볼 수 있는 염증의 결과물이 고름입니다.

이런 염증 반응은 젊은 사람들에게는 뚜렷하게 나타나므로 직장인들이 병가를 내거나 학생들은 학교에 결석하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젊은 사람들은 세균이나 바이러스와 싸우는데 필요한 면역 세포가 충분하고, 이 세포들이 면역 글로불린도 넉넉하게 만들어냅니다. 또한 염증 반응에 필요한 화학 전달 물질들도 풍부하게 갖추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 면역 시스템은 정상이라도 염증 반응은 약해질 수 있습니다.

방광염이라는 염증이 있는데도 증상이 거의 나타나지 않은 A씨처럼 고령(나이)은 염증 반응을 약하게 하는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이는 백신 주사 때도 비슷하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다 똑같지는 않으며, 고령이라도 염증 반응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백신 주사 후 이상 반응이나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해서 항체가 형성되지 않았을 것으로 지레 짐작해서는 안된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염증을 뜻하는 ‘염(炎)’이 붙은 질병만 해도 치주염, 인후염, 편도선염, 비염, 중이염, 기관지염, 폐렴, 위염, 대장염, 피부염 등 많습니다.

몸에서는 수시로 크고 작은 전투(염증)가 벌어집니다. 면역 시스템이 365일 24시간 우리 몸을 지키고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