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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대 L씨는 부작용 논란이 있었던 코로나19(COVID­19) 백신 1차 접종을 받았습니다. 귀가 길에 걱정이 돼서 약국에서 타이레놀도 구입했습니다. 하지만 당일은 물론, 이틀 사흘 뒤까지 아무 이상이 나타나지 않았고, 한 달 이상 지난 지금까지 백신 부작용으로 의심할만한 증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의료기관에서 일하는 L씨 아들(40대)도 같은 백신을 접종했습니다. 부작용이 걱정돼 금요일에 주사를 맞았습니다. 당일에는 별 이상이 없었으나, 이틀~사흘째는 심한 몸살이 나서 타이레놀을 먹으며 힘들게 버텼다고 합니다.

L씨 부자는 백신을 맞고 난 뒤 왜 이렇게 다른 경험을 하게 됐을까요?

백신을 접종한 뒤에 몸살을 겪었다는 경험을 소개한 동영상들이 다양하게 인터넷에 올라 있습니다. 그 중에는 백신 접종 후 이상 반응이 심하면 젊고, 적거나 없으면 나이가 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농담도 있었습니다.

백신을 접종한 의료기관 관계자들의 경험담을 들어보면 대체로 40대 이하는 몸살 등의 이상 반응이 심하고, 50대 이상은 약하거나 없다는 공통점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백신 반응에 상당한 차이가 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떠도는 말처럼 나이를 먹으면 ‘면역력’이 떨어지기 때문일까요?

정확한 원인을 규명하려면 연구가 필요하겠습니다만, 저는 두 가지로 추정합니다.

첫째는 코로나19와 유사한 바이러스, 또는 침팬지 아데노바이러스와 비슷한 바이러스에 이미 노출됐을 가능성입니다.

나이 든 사람들은 젊은 사람들에 비해 감기에 더 많이 걸렸다고 봐야 합니다. 알려진 감기 바이러스는 200종이 넘습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코로나 바이러스는 23종, 사람에게 감염증을 일으키는 것은 7종입니다. 이 중 4가지는 이미 200종의 감기 바이러스에 포함돼 있고, 나머지 3개가 사스, 메르스, 코로나19 바이러스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일으킨 감기를 앓으면 이에 대한 면역이 형성됩니다. 감기를 일으킨 코로나 바이러스들은 코로나19와 비슷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감기에 걸려 형성된 면역이 코로나19 바이러스에도 일정한 정도로 반응할 수 있습니다.

국내 대학연구팀이 올해 초 국제학술지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코로나19 감염력이 없는 한국인 10명 중 6명이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대한 항체를 형성하는 면역세포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연구 대상자가 적어서 일반화하기는 이르지만, 한국인들의 상당수가 코로나19와 유사한 바이러스에 노출된 경험이 있을 가능성을 시사해주는 대목입니다.

나이가 많은 사람은 젊은 사람들에 비해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감기에 걸려 그에 대한 면역세포를 보유하고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면역세포를 가지고 있으면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반응이 약하거나 나타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일부 백신은 침팬지에게 감기를 일으키는 아데노바이러스를 이용해 코로나19 바이러스 유전자를 운반합니다. 아데노바이러스에 대한 반응도 강하거나 약하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둘째는 나이에 따른 면역 시스템의 변화 가능성입니다.

면역은 수많은 요소들의 집합체입니다. 면역이라고 하면 면역글로불린, 백혈구, NK세포, T세포, B세포 등이 흔히 알려져 있습니다만, 이보다 훨씬 많은 요인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인체 면역세포의 총 숫자는 약 2조 개로 추정됩니다. 이는 혈액 속은 물론 세포 속과 세포 사이 등 온 몸에 골고루 분포하고 있습니다. 이를 한 데 모으면 간(肝)만큼 클 정도로 양이 많습니다.

그런데 특정 질환이나 백신으로 형성된 항체를 모두 넉넉하게 보유하려면 몸 전체를 다 써도 공간이 부족할 것입니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항체는 최소 분량만큼만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바이러스나 세균이 많이 침투해 항체가 많이 필요할 때는 항체를 증폭해서 사용합니다.

마치 손오공이 머리카락을 이용한 분신술로 여러 명의 손오공을 만든 뒤 힘을 합쳐 요괴들과 싸우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처럼 항체를 증폭하는 능력이 나이가 들면 약해질 수 있다는 의견이 제시돼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면역은 시스템이므로 부분적으로, 또는 일시적으로 약해진 곳이 생겼다고 해도 ‘면역력이 떨어졌다’고 단언할 수 없습니다. 큰 숲에서 나뭇잎 몇 개가 떨어졌다고 해서 가을이 왔다고 판단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면역력’이란 표현도 잘못됐다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인체의 전체 면역을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이 없고, 면역을 인위적으로 올릴 방법도 마땅치 않습니다. 따라서 특정 식품이 ‘면역력을 높인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으며, 설령 있다고 해도 불충분합니다. 굳이 비용과 노력을 들여 챙겨먹을 필요가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