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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미국 하버드의대는 일란성 쌍둥이 형제 사이에 콩팥 이식 수술을 최초로 성공함으로써 역사적인 발걸음을 내디뎠습니다.

그 무렵 선진국 몇몇 병원들이 장기 이식 수술에 도전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는데 주요 원인이 ‘거부 반응’이었습니다.

바이러스나 세균과 같은 극도로 미세한 것만 몸에 들어와도 면역 시스템이 가동되는 등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그러니 바이러스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남의 콩팥이 이식되면 몸은 강력한 거부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면역 시스템은 이식된 장기를 ‘거대한 침입자’로 감지해 몸 밖으로 내쫓으려고 합니다. 그러면 이식된 장기가 작동을 중단하거나 조직이 괴사해 이식이 실패로 끝납니다.

하버드의대는 일란성 쌍둥이 형제간에 콩팥을 이식해 오래 생존시키는데 성공함으로써 장기이식 수술이란 위대한 길을 개척했습니다. 일란성 쌍둥이는 조직 적합도가 높고, 거부 반응이 적다는 점을 활용했던 것입니다. 면역억제제는 콩팥 이식 수술에 성공한 지 한참 뒤에 개발되었습니다.

장기이식은 ‘현대 의학의 꽃’이자, ‘면역학의 최첨단’으로 불립니다.

콩팥 이식 수술의 경우, 신장내과와 이식외과는 기본이고 때로는 미세접합을 위한 성형외과, 기증자와 이식환자의 심리적 치료를 위한 정신건강의학과 등 다양한 진료 과가 팀워크를 발휘하지 않으면 성공하기가 어렵습니다.

콩팥 이식수술이 가장 먼저 성공함에 따라 신장내과는 지난 60여 년 간 이식 면역학 발전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세균이나 바이러스에 국한시켜 본다면 면역과 좀 떨어져 보일 수도 있는 신장내과를 전공한 제가 면역에 대해 종종 말씀드리는 것도 콩팥 이식 환자 진료를 위해 면역학을 깊이 있게 공부했고, 이식환자 진료 경험도 많이 쌓았기 때문입니다.

면역학 연구를 살펴보면 흥미로운 내용들이 많은데 그 중 하나가 ‘면역 관용’입니다.

작디작은 바이러스나 세균만 들어와도 면역 시스템이 작동하는데, 이보다 훨씬 큰 ‘무엇’이 들어오면 어떤 일이 나타날까요?

대표적인 것이 임신입니다. 임신 여성에서 볼 때 태아의 절반은 남의 조직입니다. 그 때문에 임신부의 면역계는 태아를 밀어내려고 합니다. 만약 면역 반응에 의해 태아가 자궁에서 다 밀려났다면 세상에는 사람이 없을 텐데 실제로는 아기들이 잘 태어납니다. 많은 연구에도 불구하고 왜 모체가 태아를 밀어내지 않는지 이유는 다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하나의 설명 모델은 이렇습니다.

모체와 태아를 남의 조직으로 감지하면 조직(태반)에 면역, 염증 반응이 나타나고 이를 억제하려고 면역세포가 집중돼 공격하면 임신이 유지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모체의 면역계 일부가 태반에서 일어나는 거부 반응을 원천 차단함으로써, 그 이후의 면역 반응을 막아 태아를 안전하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장기이식 환자에게서도 이와 유사한 현상이 나타납니다. 콩팥 이식 환자 중에서 37년 동안 생존해 계시는 분이 있습니다.

환자의 성실한 건강관리 노력과 의료진의 세심한 진료 덕분이겠습니다만, ‘면역 관용’도 한몫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면역체계가 처음에는 이식된 장기를 남의 조직으로 감지하지만, 서서히 적응하면서 관용이 높아져 조화롭게 공존하게 되는 것입니다.

면역 시스템이 태아나 이식된 장기에 대해 왜 관용을 일으키는지를 밝힌다면 장기이식 의학과 의술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유산과 조기 출산 예방, 자가면역 질환과 암 치료 등에도 무척 유용하게 활용될 것입니다.

면역에서 풀어야 할 또다른 숙제는 면역억제제의 개선입니다. 현재의 면역억제제는 면역 시스템 전체를 억제합니다. 이식된 장기에만 한정적으로 작용해야 하는데, 온 몸에 무차별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면역 저하에 따른 감염 위험 증가 등의 문제점이 있습니다.

면역억제제를 투여했을 때 이식 장기 부위에만 작용하는 ‘특이적 약물’이 개발되어야 약물의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항암제도 과거에는 비특이적으로 몸 전체에 작용하면서 구토, 설사, 탈모, 입안이 허는 등의 부작용을 일으켰지만 특이적 ‘표적 항암제’가 개발되면서 부작용은 줄었고, 치료 효과는 높아졌습니다.

‘표적 면역억제제’가 개발되면 오랫동안 면역억제제를 복용해야 하는 환자들에게 복음이 될 것입니다.

이처럼 면역억제제가 필요한 곳에만 선택적으로 작용하게 하는 기술은 아직 없습니다. 면역에 대해 우리는 아직도 초보라는 뜻입니다.

첨단기술의 결과물인 약도 이런데, 하물며 음식이나 행동으로 면역을 높일 수 있을까요? 그런 주장이 얼마나 무모한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