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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 초 남성 A씨는 고혈압이 있으나 약물로 조절되고 있습니다. 경동맥이 약간 두꺼워져 있는 등 동맥경화증 증세가 있지만, 중증은 아닙니다.

진료를 마칠 때 그가 “뇌 사진을 찍어봐야 되지 않을까요?”라고 물었습니다.

뇌 사진을 찍어보고 싶다는 환자를 종종 만납니다. 자기공명영상(MRI) 촬영으로 뇌혈관 또는 뇌 조직의 이상 여부를 미리 알고 싶다는 뜻입니다.

이유는 다양합니다.

경동맥 협착이 생기면 뇌졸중 위험이 증가한다는 사실 때문에 뇌 MRI를 찍어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경동맥 협착은 뇌혈관 외에 심장, 콩팥 등 전신의 혈관 질환 여부를 알려주는 중요한 지표이기도 합니다.

치매, 어지럼증, 두통, 이명, 기억력 감퇴 등을 겪는 사람들도 혹시 뇌 건강 이상 때문은 아닌지 걱정합니다. 눈이 침침하거나, 난청(難聽) 등 머리와 목 부분에서 어떤 증상이 나타나도 뇌 MRI를 찍어보려고 합니다.

또 뇌졸중 가족력이 있거나 고혈압, 당뇨병 등 만성질환이 있는 사람들 중에서도 뇌 건강에 각별한 관심을 보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의료 외적으로는 MRI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범위가 확대됐고, 민간 실비보험 가입자가 늘면서 비용 부담이 줄어든 것도 뇌 MRI에 대한 수요 증가를 초래하고 있습니다. 각 병원에는 MRI 환자들이 크게 늘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조금만 이상이 느껴져도 뇌 MRI를 찍어봐야 할까요?

판단의 기본은 증상이 나타났을 때 신경과 또는 신경외과 전문의의 진료를 받아보는 것입니다.

뇌의 ‘일과성 허혈 발작(transient ischemic attack)’이란 게 있습니다. 이는 뇌혈관이 좁아져 뇌 조직에 혈액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생기는 일종의 일시적 뇌졸중인데, 대개 뇌졸중보다 증상이 약하고 1시간 이상 이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발생해도 잘 모르고 넘어가기 쉽습니다. 일과성 허혈 발작을 겪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24~48시간 안에 뇌졸중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돼 있습니다. 따라서 일과성 허혈 발작을 겪었다면 최대한 빨리 뇌 MRI를 찍어 확인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문제는 일과성 허혈 발작을 포함, 뇌의 이상으로 나타나는 다양한 증상을 환자가 정확히 파악해 의사에게 말한다는 보장이 없다는 점입니다.

뇌는 조직을 둘러싼 막이나 일부 조직을 제외하면 통증을 느끼는 신경이 없어 뇌 조직에 종양이 생겨도 통증이나 불편함이 잘 나타나지 않습니다. 심각한 증상임에도 환자가 모를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뇌 MRI를 찍어야 할지 말지 애매한 상황이면, 가급적 환자의 요청을 들어주는 편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나와 있습니다.

MRI, CT, 초음파, X선 등은 피부를 절개하지 않고 몸 안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개발된 영상의학 장비들입니다. 정확도도 상당히 높아졌습니다. 몸에 이상이 느껴질 때 이들 장비로 촬영해 의사가 눈으로 확인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환자들도 의사가 영상 촬영 결과를 보여주면서 설명할 때 더 잘 받아들입니다. ‘보는 것이 믿는 것(Seeing is believing)’이란 말은 진단에서도 유용한 경구입니다.

물론 약간의 이상 증상이 있다고 해서 바로 뇌 MRI를 찍는 것은 과잉 진료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아무튼 뇌 MRI 촬영에서 몇 가지 일반적 판단 기준은 있습니다.

65세 이상으로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만성콩팥병, 비만, 협심증, 동맥경화증 등이 있으면 뇌 MRI 촬영을 검토해볼 수 있습니다. 뇌졸중 가족력도 뇌 MRI를 적극 고려하게 하는 요인입니다. 물론 절대적인 기준은 아닙니다.

이명, 이석증, 난청, 눈과 코의 질환 등 머리, 얼굴 부위에 생겼으나 뇌와 직접적 연관성은 높지 않은 질환은 그에 적합한 치료법을 찾는 게 우선입니다.

A씨에게 “당장 뇌 MRI를 찍어야 할 중대한 이유는 없다고 보이네요. 저용량 아스피린을 처방해 드릴테니 잘 드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해주었습니다.

뇌 MRI 촬영은 너무 아껴도 안되고, 남발해서도 안됩니다.

최근 MRI 촬영이 너무 많지 않은가 하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판단을 위해 신경과, 신경외과, 내과, 영상의학과 등 여러 분야 의사들이 참여하는 정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뇌 MRI 촬영이 뇌 질환 조기 발견에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통계도 내봐야 합니다.

뇌 MRI에 대한 ‘정답’은 아니라도, ‘최선책’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할 것으로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