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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을 떠올리면 즐거웠던 추억과 힘든 기억들이 다 있습니다. 그중에서 시험 스트레스는 잊을 수가 없지요. 공부를 제법 열심히 했는데도 시험 성적이 기대 이하로 나왔을 때는 화가 나고 때로는 허탈합니다.

어떤 학생들은 ‘결과(성적)보다 과정(노력)이 더 중요하다’면서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했습니다.

학창 시절의 이런 추억이 중장년 이후 병원 진료실에서 다시 소환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70대 여성 환자 K씨. 소변검사와 혈액검사를 한 결과 콩팥 기능이 36%로 나타났습니다. 석 달 전 42%에서 6% 포인트 떨어진 것입니다. 그는 3년 전 콩팥 기능이 60% 미만으로 떨어진 상태가 3개월 이상 지속되는 것이 확인돼 만성콩팥병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동안 약물치료와 운동, 식사조절을 비교적 잘 했으며, 콩팥 기능도 비교적 잘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진료에서 꽤 많이 나빠진 것이 확인됐습니다.

제가 K씨에게 “식사량도 많으시고, 짜게 드셨네요”라고 했더니, 그는 “별로 많이 먹지 않았고, 싱겁게 먹으려고 했는데요...”라며 말끝을 흐렸습니다. 나름 노력했는데도 불구하고 결과가 나빠졌다고 하니 억울하다는 표정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불면증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매일 저녁 바나나와 우유를 먹었다”고 했습니다. 평소대로 식사하면서 바나나와 우유를 더 먹으면 체중이 불어날 수 있고, 칼륨을 과다하게 섭취할 수도 있습니다. 특히 만성콩팥병 환자는 칼륨을 많이 섭취하면 안됩니다.

그밖에 더 드신 게 없냐고 물었더니 “아참, 불면증에 좋다고 해서 산조인과 대추를 넣고 달인 물을 자주 마셨어요”라고 했습니다.

산조인은 민간요법에서 불면증 개선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져 있다고 합니다. 건강한 사람이라면 차로 조금 마시는 정도는 별 문제가 없을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만성콩팥병이 있다면 전혀 다릅니다. ‘시험 성적(검사 결과)’이 나빠진 원인이 하나둘씩 밝혀지게 되었습니다.

무심코 먹는 건강식품이나 허브, 진통제 한 알도 콩팥에 상당한 손상을 입힐 수 있습니다. 소금, 고기, 담배, 술, 탄산음료, 과도한 운동, 단백질 보충제, 위장약도 콩팥 건강의 위험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만성콩팥병이 있는 사람이 이런 식품, 약을 함부로 복용하다 심하게 악화된 사례는 많습니다.

K씨에게 이를 설명해주고, “불면증이 심하시면 차라리 수면제를 처방해 드릴테니 이것을 드시고, 다른 것은 드시면 안된다”고 말했습니다. 아울러 우유와 바나나를 포함해 전체 먹는 양을 줄이고, 특히 소금 섭취량은 반드시 줄이셔야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저의 권고를 잘 실천하면 콩팥 기능이 저하되는 것을 막거나 최대한 늦출 수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몇 달 동안 K씨가 했던 것과 같은 행동을 반복하면 콩팥 기능이 계속 저하됩니다. 콩팥 기능이 15% 미만으로 떨어지면 신장 투석을 받아야 하거나 신장 이식의 대상이 됩니다.

만성콩팥병, 고혈압 등 대부분의 만성질환은 진단을 받은 뒤 평생 동안 지루하게 관리해나가야 하는 병입니다. 열심히 노력해도 좋아질까 말까 하지만, 잠시 방심하면 순식간에 악화되곤 합니다.

벼락치기 공부로 시험성적을 올리고 싶은 경우처럼 병원 진료를 앞두고 며칠만 운동과 식사조절을 잘 하기만 해도 검사 결과가 좋게 나올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몇 가지만 검사해보면 최근 몇 달 간 몸 상태가 어땠는지 대부분 알 수 있습니다.

의사는 만성콩팥병을 진단하고 약물을 처방해 잘 복용하시라고 권고할 수는 있지만, 환자가 일상생활에서 운동을 하는지 안하는지, 무슨 음식이나 건강식품을 먹는지 일일이 감시할 수는 없습니다. K씨가 산조인을 달여 먹었다고 말하지 않았으면, 그 사실까지 검사로 알아내기는 어렵죠.

여러 차례 강조해서 말씀드렸습니다만, 만성질환 치료에서 의사의 역할보다 환자의 역할이 더 큽니다. 그래서 환자가 만성질환 관리, 치료의 주인공이라고 강조해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나의 시험을 가족이나 친구가 대신 쳐줄 수는 없듯이, 나의 만성질환을 대신 앓아줄 사람은 없습니다. 나의 시험 성적이 꾸준한 공부에 달려 있듯이 만성질환의 관리와 치료는 하루하루 실천에 달려 있습니다.

꾸준한 노력 없이 좋은 결과를 얻기 힘들다는 점에서 공부와 만성질환 관리는 무척 닮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