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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성콩팥병 진료를 받으러온 60대 여성 B씨. 소변검사와 혈액검사 결과 하루 소금 섭취량이 14g, 단백질은 95g으로 권고량보다 훨씬 많이 섭취하는 것으로 나왔습니다.

그에게 “너무 짜게 드시고 고기도 많이 드시는 식습관을 고치지 않으면 만성콩팥병이 빨리 나빠질 수 있다”라고 이야기해주었습니다.

그런데 B씨의 표정이 떨떠름합니다. 그는 “평소에 싱겁게 먹고, 고기도 많이 안먹는데요”라며 저의 말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대학병원을 포함해 지금까지 50만 명 가까운 환자를 진료해왔지만, B씨 같은 환자를 만날 때면 참 난감합니다.

이런 환자는 성별과 연령을 가리지 않고 있습니다만 공무원, 전문직, 자수성가한 사업가들에게 다소 많은 편입니다. 성공적인 삶을 살아왔다고 할 수 있는 이들은 확고한 소신, 다른 말로는 ‘뚜렷한 고집’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즘은 이에 포함되는 여성들도 적지 않습니다. 남편과 자녀들을 위해 오랜 세월을 헌신했으나, 뒷바라지가 끝난 뒤 심한 공허함을 경험하는 ‘빈둥지 증후군’을 겪는 50~60대 여성 중에 이런 사례가 흔한 편입니다.

지나간 세월을 보상 받고 싶지만 쉽지 않습니다. 이 때 흔히 나타나는 행동이 ‘식탐’입니다. 맛집 순례 정도에만 그치지 않고 먹는 것에 대한 집착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검사해보면 비만 또는 만성질환을 일으키거나 악화시킬 정도로 식사량이 많고 짜고 달게 먹습니다. 그렇지만 자신의 잘못된 식생활에 대한 의사의 말을 잘 납득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합리화하려는 태도가 강한 고집으로 드러납니다.

문제는 이것이 단순히 고집으로 그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고혈압, 당뇨병, 만성콩팥병 등을 관리하려면 약 복용 외에도 운동, 식사, 체중조절 등의 생활습관 변화도 실천해야 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생활습관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 즉 고집이 뚜렷하니 생활습관을 고치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젊을 때 성공의 밑바탕이 됐던 확고한 신념이 나이가 들면서 고집으로 변해 건강에 상당한 위험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60대 남성 C씨는 가족, 친구들과 점점 거리가 멀어지고 있습니다. 젊을 때는 무난한 성격이었는데, 몇 년 전부터 사소한 일에도 ‘벌컥’ 화를 내는 현상이 잦아졌습니다.

그는 ‘욱하는 성격’으로 바뀐 자신의 모습이 어색하고, 가까웠던 사람들과 점점 소원해지는 것이 불안하기도 하지만 어찌해야 할 줄을 모릅니다. ‘욱’ 또는 ‘벌컥’하는 습관은 개인의 성격과도 관련이 있습니다만, 나이의 영향도 적지 않게 받습니다.

뇌의 전두엽은 인간의 본능을 억제함으로써 사람을 사람답게 해줍니다. 대소변을 가리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성숙해지면서 남과 소통, 공감하는 등의 정교한 정신 활동에도 작용합니다. 그런데 노화가 시작되면 전두엽의 기능이 약화되면서 ‘억제’ 작용이 느슨해집니다. 노화 외에 전두엽의 억제 기능을 느슨하게 하는 것이 알코올과 치매입니다.

순간적인 분노나 불만을 억제하지 못하고 ‘벌컥’하는 모습을 보면 주변 사람들은 처음에는 놀라다가 차차 멀어집니다. 인간관계에서 파열음이 자주 들리고, 어느 순간 주변을 둘러보면 친했던 사람들이 다 떠나갔음을 알게 됩니다.

이는 고독감이나 우울증을 가중시켜 노년의 자살률을 높일 뿐 아니라 만성질환의 관리, 치료에도 악영향을 끼칩니다. 전두엽의 기능 저하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고 해도 자신의 변화를 정확히 알고 ‘벌컥’하지 않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굳은 소신이나 신념은 성공의 자산이지만, 나이든 뒤에는 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술에 물탄 듯, 물에 술탄 듯이 살려고 애써야 합니다.

젊은 시절에는 단심가(丹心歌) 스타일의 삶을 살았다고 하면, 나이든 뒤에는 하여가(何如歌) 스타일로 사는 것이 건강 장수에 유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