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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격의료’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들립니다. 코로나19(COVID19) 사태 이후 병의원에 가기 힘든 만성질환 환자들에게 한시적으로 전화 상담 후 처방전 발행을 허용했는데, 그 건수가 20만 건을 넘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원격의료 도입의 이유가 되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정부도 이른바 비대면 산업 육성 차원에서 ‘비대면 진료’를 동네의원을 중심으로 시행할 것이라고 밝혔고, 대한병원협회는 초진 환자 대면진료 등 몇 가지 조건을 전제로 원칙적 찬성 입장을 내놓았습니다.

대한의사협회 등의 반대 입장도 분명해서 원격의료를 둘러싼 진통은 지속될 전망입니다.

찬성 쪽에서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운영해본 결과 효과가 증명됐다고 주장합니다.

반대 쪽에서는 원격의료에 대한 반대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비대면 진료라는 애매한 용어를 들고 나와 상황을 호도하고 있다고 반박합니다.

언젠가는 원격의료가 도입될 날이 오겠습니다만, 그 시점이 언제일지를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이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보니 중요한 의제가 간과되고 있는 느낌입니다. 바로 환자입니다.

상당수 사람들이 원격의료를 원격 모니터링 정도로 오해하고 있습니다. 환자가 집에서 잰 혈압이나 혈당 데이터를 스마트폰 등으로 병원으로 전송하면 의사가 기록을 보고 처방전을 환자의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로 보내주면, 동네 약국에서 약을 구입해 복용하는 원격의료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의사와 정보통신 기술만 있으면 원격의료가 잘 이뤄질 것으로 봅니다.

그런데 혈압이나 혈당과 같은 데이터가 저절로 병원으로 전송되지 않습니다. 물론 미래에는 완벽한 기계나 장비가 개발될 수도 있겠습니다만, 상당 기간은 환자 본인 또는 보호자가 혈압이나 혈당을 재고 그 데이터를 의사에게 보내야 합니다. 이를 정확하게 해내는 일은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의사가 환자는 대면 진료할 때는 환자가 호소하는 주 증상 외에 혈압, 혈액이나 소변검사, 초음파 또는 X선 검사 등 다양한 자료를 활용합니다. 이런 것은 수치화할 수 있는 자료입니다.

환자에게 묻고(문진), 소리를 들어보며(청진), 두드려보는 등(탁진)의 수치화하기 힘든 것들도 진단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걸음걸이와 얼굴색, 말할 때의 호흡 등의 미세한 움직임을 살펴보기도 합니다.

첨단 스마트폰으로 데이터 전송이나 영상 통화가 가능해졌지만, 의사가 환자와 마주 앉아서 파악하는 다양한 정보에는 크게 미치지 못합니다.

초진(初診)은 대면 진료를 하고, 재진(再診)부터 적용하면 비대면 진료가 그리 어렵지 않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고혈압, 당뇨병, 만성콩팥병 등 만성질환의 경우 한두 달 사이에 확 나빠지는 경우가 많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만성질환이 한두 달 사이에 갑자기 나빠지지 않는다는 주장도 과학적 증거가 미약합니다.

건강편지에서 ‘의료 권력의 이동’에 대해 몇 번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의료, 그 중에서도 만성질환 치료의 주연이 ‘의사’에서 ‘환자’로 옮겨가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원격의료가 도입되면 더 많은 의료 권력이 환자에게 이동하게 될 것입니다.

어떤 상황이 되든, 미래에는 환자의 역할이 지금보다 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혈압, 혈당 등 각종 데이터를 측정, 전송하는 일 뿐 아니라 약 먹기, 운동, 식사 요법 챙기기도 주도적으로 해내야 합니다.

주연이라는 말은 그만큼 할 일이 많다는 뜻입니다. 흡연자 중 뇌졸중 치료를 받은 뒤에도 계속 담배를 피우는 사람의 비율이 49.4%에 이른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대면 진료를 통해 의사가 끊임없이 금연을 강조해도 실천하는 사람이 이렇게 적은데, 비대면 상황에서는 어떨까요? 이러고도 주연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정부와 의료단체는 원격의료 논쟁과는 별개로 환자들의 의료 지식을 높이는 한편, 환자들이 건강수칙을 잘 지킬 수 있게 하는 등 인식개선과 캠페인에 적극 투자해야 합니다. 환자들도 의사들에게 있던 의료 권력의 상당 부분이 자신들에게 옮겨온다는 것의 의미와 권력에 따른 책임이 얼마나 무거운지를 숙고해야 합니다.

의료 권력의 이동과 원격의료는 맞물려 있습니다. 수준급 의료, 뛰어난 정보통신 기술, 환자들의 지식과 인식 등 세 가지가 균형과 조화를 이뤄야 의료 권력의 이동이 자연스럽게 이뤄질 것이며, 원격의료도 성공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