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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뇨병의 개념은 히포크라테스 시절에도 알려져 있었지만, 혈당을 조절하는 인슐린은 그로부터 2000년 이상이 흐른 1910년대에 비로소 발견되었습니다.

인슐린 발견 이후 많은 학자들이 당뇨병의 원인과 치료법을 찾기 위한 연구에 뛰어들었습니다. 인슐린이 부족하면 혈당 조절이 되지 않는 당뇨병이 생긴다는 것, 그리고 당뇨병 환자에게 인슐린을 투여하면 증세가 호전된다는 사실 등이 밝혀졌습니다.

그런데 일부 젊은 당뇨병 환자들을 검사해보니 인슐린 수치가 꽤 높게 나왔습니다. 혈액 속에 인슐린이 충분히 있는데 왜 당뇨병이 생겼을까요? 뭔가 앞뒤가 맞지 않은 현상이 나타났으나, 왜 그런지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 때 이를 눈여겨 본 여성 과학자 한 명이 있었습니다.

핵물리학과 생리의학을 전공한 미국의 로절린 얄로 박사였습니다. 그는 혈액 속에 든 아주 작은 양의 물질을 방사성 동위원소를 이용해 찾고 추적하는 분야의 전문가였습니다. 그 물질 중에는 인슐린도 포함됩니다.

얄로 박사는 왜 인슐린이 분비되는데도 당뇨병이 발생하는지를 밝히는 연구에 몰두했고, 수많은 고생 끝에 ‘인슐린 저항성’이란 것을 찾아냈습니다.

인슐린 저항성이란 쉽게 말해 인슐린이 제 구실을 못하는 것입니다. 인슐린 저항성을 발견하면서 인슐린이 분비되지 않아 생기는 1형 당뇨병과 인슐린은 분비되지만 제 구실을 못하는 2형 당뇨병을 구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공로로 얄로 박사는 1977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했습니다.

20여 년 전 서울대병원에서 열린 초청 강연에서 얄로 박사는 “당뇨병 환자의 인슐린 수치가 높으면 측정이 잘못됐겠지 하고 그냥 넘겨버렸을 수도 있었다”며 “하지만 젊은 당뇨병 환자가 ‘왜 저는 인슐린이 있는데도 당뇨병인가요?’라고 했던 말이 연구에 몰두한 계기가 됐다”고 말했습니다.

1940년대 미국의 한 병원. 의사들이 콩팥 기능이 떨어진 환자들을 대상으로 약물(스테로이드)을 투여하여 콩팥 기능의 변화를 보는 임상시험을 했습니다. 1920년대에 스테로이드가 발견됐지만 어떤 효과와 부작용이 있는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았습니다. 콩팥 기능이 저하된 사람에게 투여하면 콩팥 기능이 호전된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임상시험에 참가했던 몇몇 환자가 연구팀에 “주사를 맞고 나서부터 손가락이 아프지 않아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류머티스 관절염 환자였습니다. 하지만 연구팀은 임상시험에 집중한 나머지 콩팥 기능 변화만 살펴보았을 뿐 이 환자들의 말은 흘려들었습니다. 이 무렵 미국 병원에는 류머티스 관절염 환자들이 ‘넘친다’고 할 정도로 많았고, 입원 환자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공동 연구자의 한 명인 필립 헨치라는 의사는 환자들의 말을 유심히 들었습니다.

그때까지 류머티스 관절염의 원인이나 치료법을 잘 몰랐는데, 필립 헨치는 환자들의 말에 주목했고, 추가 연구를 통해 스테로이드가 탁월한 염증 개선 효과가 있음을 찾아냈습니다. 이 공로로 필립 헨치는 1950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습니다.

노벨생리의학상 사례 두 건을 말씀드린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일년 전인 2018년 12월에 보내드린 ‘의사의 스승인 환자가 할 일’이란 건강편지를 기억하시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환자는 의사의 스승’이라는 표현은 환자에게 잘 보이려는 아부의 말이 아닙니다. 환자의 말 한 마디, 몸짓, 표정, 가족력 등을 꼼꼼하게 살펴보는 것이 진단과 치료에서 크나큰 역할을 한다는 의미입니다.

환자의 입장에서는 의사를 만날 때 증상과 통증 가족력 등을 있는 그대로, 조리 있게 이야기하거나 꼼꼼히 기록해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환자가 무심코 던진 말 한 마디를 흘려듣지 않고 주목한 의학자들이 의학, 의술 발전에 큰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여러분의 말 한 마디, 메모 한 장이 혹시 한국 최초의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의 작지만 소중한 계기가 될지 누가 알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