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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때 캐럴만큼 자주 들리는 음악이 차이콥스키의 ‘호두까기 인형’입니다. 호두까기 인형을 넛크래커(Nut cracker)라고 하는데, 호두를 까는 기구라는 뜻으로 ‘호두까개’라 부르기도 합니다. 가운데 호두를 넣고 손잡이를 눌러 호두를 깨서 알맹이만 꺼내도록 만들어져 있는데 우리 주방에서 쓰는 마늘 까는 기구와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저에게 ‘호두까기’는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2018년 여름, 20대 후반의 여성 환자가 “오래 전부터 단백뇨가 나오는데 원인을 못찾았다”면서 진료를 받으러 왔습니다. 그런데 “단백뇨가 많이 나왔다가, 적게 나왔다가 해요”라는 말이 귀에 딱 와 닿았습니다.

일정 기준 이상의 단백뇨가 3개월 이상 지속되면 만성콩팥병인데, 대체로 단백뇨 수치의 변폭 폭이 20% 이내를 유지합니다. 만성콩팥병에서 단백뇨가 많이 나왔다가 적게 나왔다가 하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문진에서 그 환자는 “몸을 움직이고 난 뒤에는 단백뇨가 많이 나왔다” “아침에 검사할 때는 적게 나왔고, 오후에는 많이 나왔다” “오래 서 있고 난 뒤 검사 때 많이 나왔다”는 등의 말을 더 했습니다.

저는 그 환자가 콩팥 기능이 떨어진 만성콩팥병보다는 구조 이상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당시 서울대병원 영상의학과 김승협 교수에게 진료를 의뢰했습니다. 김 교수는 비뇨생식기와 콩팥 등의 초음파 진단에서 최고 전문가입니다.

김승협 교수의 진단결과를 가지고 환자가 제게로 다시 왔습니다. 예상대로 ‘호두까기 증후군’이었습니다.

콩팥은 좌우에 두 개가 있는데, 각각의 콩팥에는 동맥과 정맥이 연결돼 있습니다. 왼쪽 콩팥에서 걸러진 혈액을 대정맥으로 보내주는 콩팥 정맥이 묘한 곳을 통과하게 돼 있습니다. 바로 대동맥과 대동맥에서 나와 장(腸)에 혈액을 공급하는 장동맥이 거꾸로 된 Y자 모양으로 갈라진 사이의 좁은 공간을 지나가는 것입니다.

대부분 별 문제가 없습니다만, 간혹 거꾸로 된 Y자 사이를 지나는 콩팥 정맥이 대동맥과 장동맥에 눌려 혈액이 잘 흐르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왼쪽 콩팥에서 피가 잘 빠져나가지 못해 콩팥이 부어오르고, 이로 인해 단백뇨, 배부통(등 아래 통증), 혈뇨, 난소 부종 등의 증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통증이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를 ‘넛크래커증후군’ 또는 ‘호두까기 증후군’이라고 합니다. 콩팥의 구조 이상을 진단하기 어려웠던 시절에는 정확하게 알기 힘들었던 질환입니다. 그 환자는 외국 유학생인데, 선진국의 여러 병원에 다녔는데도 호두까기증후군을 정확하게 진단받지 못했습니다.

‘호두까기 증후군’은 만성콩팥병은 아니며, 약물치료는 하지 않습니다. 잠잘 때 왼쪽으로 누워서 자기, 마른 사람들에게 잘 나타나므로 체질량지수(BMI)를 20 이상으로 유지할 것, 오래 서 있는 자세는 가급적 피할 것 등으로 개선할 수 있습니다. 아주 심한 사람들은 아예 왼쪽 콩팥을 떼서 오른쪽 복부 쪽으로 옮기는 수술을 할 수도 있으나, 흔치는 않습니다.

얼마 전 그 여성 환자가 진료를 받으러왔는데, 단백뇨의 원인을 알게 됐으며 단백뇨도 어느 정도 해소된 것이 확인돼 밝은 표정으로 돌아갔고, 며칠 뒤 감사 편지도 보내왔습니다.

작년에 제가 콩팥 초음파 검사를 의뢰했던 서울대병원 영상의학과 김승협 교수는 올해 8월말에 정년퇴직했습니다. 그리고 올해 9월 세계초음파학회 회장에 취임해 바쁜 김승협 교수를 제가 서울K내과로 모셔와 함께 진료하고 있습니다.

신장내과 전문의인 저는 주로 콩팥의 기능 이상을 진료하는데, 모양이나 구조 이상은 진단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영상의학과에서 콩팥, 비뇨생식기를 전문으로 진단하는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꼭 필요한데, 마침 최고 전문가인 김 교수를 모셔오게 된 것입니다.

콩팥 구조 이상으로 인한 증상이 있는데도 정확한 진단을 받지 못하고 병원을 전전하는 환자들의 안타까운 사연들이 많습니다. 그 분들에게 저와 김승협 교수의 협진이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