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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대 중반 남성 환자 한 분이 있습니다. 고혈압과 당뇨병, 만성콩팥병 등 만성질환이 있고, 전신쇠약까지 있어서 힘들게 진료를 받으러 오시는 분입니다. 이 환자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교수님, 제가 하루 빨리 건강해져야 아내를 집으로 데려올 수 있어요. 꼭 좀 도와주세요.”

사연이 있었습니다. 그 분의 부인은 치매로 진단을 받고 집에서 남편의 보살핌을 받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몇 달 전 요양병원에 입원했고 처음에는 매일 면회를 다가 이틀에 한 번, 한 주에 한 번씩으로 조금 뜸해졌고 요즘은 한 달에 한두 번 간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부인은 면회 간 남편에게 “집에 가고 싶다”며 심하게 떼를 쓰고 남편을 따라 나서려 한다는 것입니다. 남편은 “내 건강이 좋아지면 아내를 집으로 데려와 죽을 때까지 보살피고 싶다”고 합니다.

그 분의 이야기를 듣고 “죄송하지만, 부인을 버리셔야 합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대단한 휴머니스트도, 냉혈인간도 아닌 그저 평범한 사람입니다. 그런 제가 왜 인륜을 저버리라는 말로도 들릴 수 있는 이야기를 했을까요?

저는 40년 이상 환자들의 곁을 지키면서 인간의 생로병사를 눈으로 생생하게 목격해왔습니다. 안타깝고 불쌍한 죽음, 사랑하는 가족과 헤어지는 힘든 순간을 견뎌야 하는 배우자와 가족들의 고통도 많이 지켜보았습니다.

특히 치매를 앓는 배우자나 부모를 간병하다 극단적 선택을 하는 비극이 언론에 수시로 보도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이라도 치매 환자 간병을 개인 또는 가정이 다 떠맡는 것은 감당하기 힘듭니다.

더욱이 혼자서 아내를 간병해야 하는 남편은 고령에다 건강도 좋지 않습니다. 요양병원에 머물고 있는 아내가 불쌍하고 안타깝다고 해도 집으로 데려올 수는 없습니다. 그랬다가는 남편이나 아내 둘 다 감당하기 힘든 비극과 마주쳐야 할지 모릅니다. ‘줄초상’이 날 수도 있습니다.

제가 “부인을 버리라”고 말한 것은 요양병원에 입원시킨 것을 너무 미안해하지 말고, 마음의 부담을 버리시라는 뜻이었습니다. ‘버린다’는 말에는 선문답처럼 여러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사망이란 숨이 멎는 생물학적 죽음을 지칭하지만, 사회학이나 인류학 등에서는 ‘사회적 죽음’이란 개념도 있습니다. 생물학적으로는 살아 있지만 친구, 동창, 교우 등 가까운 사람들과 인연을 끊고 낙향해 고립된 채 살아가는 것을 사회적 죽음으로 봅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요양시설에 장기간 머무는 것도 일종의 ‘사회적 죽음’으로 볼 수 있습니다.

치매에 걸린 배우자, 부모를 요양시설에 보내는 것을 ‘사회적 죽음’으로 여기고 가족들이 죄책감에 시달리는 경우도 생깁니다. 실제로 앞에서 말씀드린 남편도 이런 심리적 부담 때문에 건강이 많이 나빠지고 있습니다.

처음 겪는 급속한 인구고령화는 우리의 삶에도 크고 작은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인간은 고령자가 많은 가정과 사회를 처음 경험하고 있고, 그로 인해 나타나는 현상들도 대부분 낯섭니다.

70살이 넘은 뒤에는 문상을 가지 않는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남의 죽음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견디기 어렵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문상과 같은 인간적, 사회적 도리는 60대까지만 하고 70대에는 하지 않아도 양해될까요?

치매와 같은 중증 질환을 앓고 있는 부모님이나 배우자를 집에서 간병하는 것이 정답일까요, 요양병원에 모시는 것이 최선일까요?

가족을 떠나보내는 사람이나, 떠나는 사람이나 힘들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은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으로 떠나 다시는 집으로 돌아올 수 없는 상황에 처했을 때, 자녀나 배우자에게 섭섭한 마음 없이 흔쾌히 떠날 수 있으실런지요? 사랑하는 가족이 여러분을 버렸다고 해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집에서 간병하기도 어렵고, 요양시설도 내키지 않는다면 대안이 있을까요?

일본 등에서 시도되고 있는 가정­지역사회 공동 보살핌 방식도 고려해봐야 할 때입니다. 치매 환자를 시설 대신 자신의 집에 머물게 하되, 간호 간병을 배우자나 자녀들에만 맡기지 않고, 지역사회나 국가가 비용과 인력 지원을 통해 일부를 분담한다는 것입니다.

가정 보호의 장점을 유지할 수 있으나,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든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여러분의 의견은 어떠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