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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의대교수가 된 1980년대 초반에는 해열 진통제로 아스피린을 흔히 처방했습니다. 그 때의 아스피린 하루 복용량은 2~5g으로 꽤 고용량이었습니다. 2g은 500mg짜리 약을 하루 네 번 복용하는 방식이었습니다.

1970년대 들어 아스피린이 해열 진통 효과 외에 심혈관 질환 예방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이에 따라 1980년대 미국에서 아스피린을 심혈관 질환 예방 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초기에는 2g의 고용량 아스피린이었다가 1g을 거쳐 500mg까지 줄였습니다. 연구가 축적되면서 그보다 적은 75~100mg의 저용량으로도 심혈관 질환 예방 효과가 있다는 것이 밝혀져 현재는 이런 저용량 아스피린이 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와 함께 주목받는 것이 아스피린의 대장암 예방 효과입니다. 지난 1988년 아스피린이 대장암 예방 효과를 가지고 있다는 내용을 담은 논문이 처음 발표된 이후 다양한 연구들이 진행돼왔습니다.

2010년 영국 옥스퍼드대학 연구팀의 논문에 따르면 저용량 아스피린을 복용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대장암 발생률이 24% 낮았습니다.

저용량 아스피린을 복용하면 대장암 발생률이 40%, 대장암에 의한 사망률을 33% 낮춘다는 연구결과도 발표된 바 있습니다. 특히 대장암과 위암 간암 등의 발병률을 높이는 것으로 알려진 유전성 질환인 린치증후군(Lynch synrome)을 가진 사람이 저용량 아스피린을 복용하면 대장암 예방 효과가 더 확실하다는 연구도 있었습니다.

이런 연구들을 바탕으로 지난 2016년 미국질병예방특별위원회(USPSTF)는 심혈관 질환과 대장암의 1차 예방을 위해 저용량 아스피린을 복용하라는 권고안을 발표했습니다.

아스피린의 대장암 예방 효과에 대해 많은 연구들이 이뤄지고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유력한 이론이 ‘상피세포 성장인자 수용체(EGFR)’와 ‘콕스­2(COX­2)’ 억제 효과에 대한 것입니다.

상피세포 성장인자 수용체는 단백질의 일종으로 세포 증식, 혈관 신생, 전이 등 암 세포의 성장, 분화, 생존에 영향을 미치는 물질입니다.

콕스­2는 인체의 혈관을 비롯해 위, 콩팥 등에 있는 염증, 통증 관련 효소입니다. 이 때문에 콕스­2 효소를 억제하면 염증과 통증을 줄일 수 있습니다. 이런 목적으로 개발된 약물을 ‘콕스­2 억제제’ 또는 ‘비(非) 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라고 합니다.

미국 메이요클리닉 등의 공동연구에 따르면 콕스­2 효소는 종양의 형성을 촉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콕스­2 효소는 상피세포 성장인자 수용체를 활성화시킴으로써 종양 생성에도 관여합니다.

저용량 아스피린을 복용하면 콕스­2 효소를 억제하거나, 상피세포 성장인자 수용체의 활성화를 막음으로써 대장암을 예방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저용량 아스피린이 대장암 예방 효과가 있다고 해서 대장암 예방을 위한 생활습관 실천을 게을리 해도 된다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대장암 예방을 위해서는 운동과 비만 억제, 육류 또는 가공육 섭취 제한, 금연과 절주, 충분한 식이섬유 섭취 등의 생활습관 실천이 가장 중요합니다. 또한 정기검진을 통한 대장암 조기 발견 역시 긴요합니다.

평소 대장암을 포함한 암 예방을 위한 생활습관을 잘 실천하는 분이 의사와 상담을 통해 저용량 아스피린을 복용한다면 좀 더 높은 대장암 예방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대장암에 심혈관 질환까지 예방할 수 있다면, 진정한 ‘일석이조’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