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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에서 환자들로부터 자주 받는 질문의 하나가 ‘물을 하루 8잔 마셔야 되나요?’라는 것입니다. 특히 무더운 여름에는 단골 질문이기도 합니다.

미국, 영국 등의 언론들도 하루 물 8잔을 마셔야 하느냐 아니냐에 대한 기사를 수시로 보도하는 것을 보면 여러 나라 사람들이 물 섭취에 관심이 많은가 봅니다.

일부에서 ‘8X8의 법칙’을 주장하기도 합니다. 물을 한 번에 8온스(약 240ml)씩 하루 8번 마시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마시면 모두 1.9L나 되니 양이 꽤 많습니다. 종이컵(약 190mL) 기준으로는 10잔이나 됩니다.

그렇다면 과연 하루에 물을 8잔 마셔야 할까요?

인간이 하루에 물을 얼마나 섭취해야 하는가에 대한 연구는 1940년대 중반에 처음 나왔습니다. 그 권고안은 하루 섭취 열량 1kcal당 1mL의 물을 섭취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즉 하루 2200kcal을 섭취하는 사람은 2.2L, 2500kcal를 섭취하면 2.5L의 물을 섭취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만 당시 물 섭취 기준에는 음식 속의 물도 포함했으므로 음료수나 생수 등으로 섭취하는 양은 이보다는 더 적었습니다.

그 후 오랫동안 물 섭취량은 크게 주목을 받지 않았으나, 2000년대 들어 미국 언론에서 하루 물 8잔을 마셔야 한다는 기사들이 집중 보도되면서 물 섭취량에 대한 논쟁이 촉발되었습니다. 그런데 과학 연구 결과가 충분히 나오기도 전에 매스컴에 크게 보도되는 바람에 ‘하루 물 8잔’을 불변의 진리처럼 여기는 사람들도 적지 않게 생겨났습니다.

하지만 연구를 종합할 때 물을 하루에 8잔 마셔야 한다는 주장의 과학적 근거는 아직 없습니다.

정상 식사를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 섭취가 부족하지 않습니다. 미국 연구에 따르면 필요 수분의 20% 이상을 음식으로 섭취합니다. 국물을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은 수분의 30% 이상을 음식으로 섭취하고 있습니다.

특히 채소와 과일에 물이 많은데 대표적인 것이 오이(96.7%), 상추(95.6%), 토마토(94.5%), 수박(91.5%), 딸기(91%) 등입니다. 고기와 식빵 등에도 40~50%의 물이 함유돼 있습니다.

그러니 정상적으로 식사하고 후식 또는 간식으로 과일과 함께 차, 커피, 음료를 마시는 등의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물이 부족하지 않습니다. 운동할 때는 물 부족증이 생길 수 있으나, 운동하는 사람들은 대개 물이나 스포츠 음료를 챙겨 마십니다.

그럼에도 물 부족에 의한 탈수증이 나타날 수 있는데, 이를 어떻게 알아차릴 수 있을까요?

탈수증의 기본 증상이 ‘갈증’입니다. 탈수 증상은 피로감, 호흡 가빠짐, 맥박 증가 등 다양하지만, 갈증이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입니다. 갈증이 나타나면 그늘로 이동하고, 물을 마셔주어야 합니다.

한 가지 조심해야 할 점은 60세가 넘어가면 몸 안에 물이 부족해도 갈증을 잘 느끼지 못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탈수증이 진행되는데도 입에서는 갈증이 나타나지 않을 수 있으므로 신경을 써야 합니다.

또 하나의 중요한 판단 기준은 소변 색깔입니다. 소변 색이 진하면 물이 부족하다는 뜻입니다. 몸 안에 물이 부족하면 콩팥에서 소변을 최대한 농축하기 때문에 소변 색깔이 짙어집니다. 소변이 농축 사과주스처럼 진한 노란색이면 탈수증이 진행되고 있는 상태로 봐야 합니다. 반대로 소변이 옅은 노란색이나 투명하면 물을 잘 마시고 있다는 뜻입니다.

하루 물 8잔에 너무 집착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우유, 음료, 물 등을 다 포함해 하루 6~8잔 정도를 마시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물론 운동하거나, 땀을 많이 흘리면서 일할 때는 더 마셔야 합니다.

마음 편하게 생활하시고, 목마를 때 물을 마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