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

‘건강염려증’이란 병


 ‘주니어 신드롬’이란 말을 들어보셨는지요? 의대 본과 3학년(junior)이 되면 의학교과서에서 배운 질병이 자신에게 다 있는 것같은 걱정이 생긴다는 의미가 있는 용어입니다.
 의대에 입학하면, 예과 2년을 거쳐 본과로 진급해 의학 공부를 합니다. 본과 1~2학년 때는 의학 각 분야를 다양하게 공부하고 3학년이 되면 임상 실습을 합니다. 교수, 선배들과 같이 실제 진료 현장에서 환자 진료 모습을 지켜보고, 간단한 처치를 직접 해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의학 지식에 임상 실습 경험이 더해지면 자신이 배운 질병들이 본인 증세와 똑같다는 착각에 빠질 수 있습니다.   
 이런 현상이 의대 3학년 때 잘 나타난다고 해서 3학년을 뜻하는 단어인 주니어(junior)을 써서 ‘주니어 신드롬(junior syndrome)’이라고 합니다. ‘의대생 증후군’이라고도 합니다. 1960년대에 의대생의 70~80%가 이런 증상을 경험한다는 논문이 발표된 적도 있습니다.  
 ‘주니어 신드롬’을 ‘건강염려증’이라 표현하기도 합니다. 과도한 건강 걱정을 ‘엄살’로 받아들이는 분이 있을지 모르지만, ‘건강염려증(hypochondria)'은 하나의 질환입니다.
 주니어 신드롬은 의대를 졸업하고 인턴, 레지던트를 거치며 자연스럽게 치유됩니다. 전문적인 의학 공부와 환자 진료 경험을 쌓으면서 의대생의 눈으로 보고 판단했던 것들이 얼마나 피상적이었는지를 깨닫기 때문입니다.
 이런 주니어 신드롬과 비슷해 보이지만, 증상이 심각하고 때로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사례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의대생이 아닌 사람들 중에 잘못된 건강 정보로 인해 건강염려증에 걸리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입니다.
 각종 건강, 의학 자료들이 홍수처럼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현대의 일반인들이 접하는 의학 정보의 양은 과거 의대생들의 정보량에 근접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이처럼 많은 건강 의학 정보에 노출된 사람들의 상당수가 주니어 신드롬과 비슷한 ‘건강염려증’ 증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들은 무엇이 믿을만한 것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채 단편적 정보를 맹신합니다. 제대로 된 정보를 말해주어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마치 사이비 종교에 심취한 사람들처럼 눈과 귀를 닫기 때문입니다.
 이를 극복하려면 수많은 의학, 건강 정보 중에서 신뢰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별할 줄 아는 안목을 키워야 하는데, 그럴 기회는 거의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한번 걸린 건강염려증이 중증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건강염려증은 단순히 건강 걱정으로만 그치지 않습니다. 건강염려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약점을 상술이 교묘하게 파고듭니다.
 하루가 멀다고 쏟아져 나오는 건강기능식품, 건강 증진 효과가 있다고 내세우는 식품들의 타깃이 건강염려증 환자들입니다.
 지난 주 어버이날에 건강기능식품 선물을 받은 분들도 있을 것이고, 부모님께 선물하신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건강기능식품'을 국내에서는 영어로 ‘Health functional foods’라고 번역하는데, 뜻은 알겠으나 자연스런 표현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영어권에서 주로 사용하는 ‘영양보충제(dietary supplement)’는 그나마 이해가 쉽습니다.
 그런데 건강기능식품을 이것저것 먹으면 무척 건강해지나요? 혹시 그렇다면, 그를 뒷받침하는 믿을만한 증거가 있나요?
 부모님의 건강을 챙기려는 자녀들의 효심은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지갑을 여는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걸린 ‘건강염려증’이 작용하지 않았는지 생각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