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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후반이니, 50년쯤 전 경험담입니다. 가족과 외국 이민을 떠나는 고교 동창을 배웅하러 친구들과 김포공항에 갔습니다. 돌아올 때 김포에서 출발해 막 개통된 제2한강교(양화대교)를 건너 4시간 여를 걸어서 신촌에 도착, 그곳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집으로 갔습니다.

당시에도 시내­시외 버스, 전차 등 대중교통 수단이 있었습니다만, 웬만한 거리는 으레 걸어 다녔습니다. 서울 광화문~동대문이 편도로 약 4km인데, 그 정도는 걸어서 오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김포공항에서 서울까지는 걸어올 거리는 아니었으나, 걷기에 익숙한 데다 친구들도 있어서 가능했을 것입니다.

중장년층 이상이신 분들은 어릴 때 등하교나 친척집 방문 등을 할 때 걸어 다녔던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도시나 농어촌이나 큰 차이가 없습니다.

‘삶이 곧 걷기’였으므로 따로 시간을 내서 걸을 필요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현대의 도시인들은 따로 시간을 내고, 애쓰지 않으면 걷기 목표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학회에 참석한 뒤 서울로 돌아오면서, 몇 걸음이나 걷는 지 측정해본 적이 있습니다. 현지 호텔을 출발해 공항에서 비행기에 탑승하고, 인천공항에 내려 집까지 오는 과정이 2500여 보에 불과했습니다. 서울~샌프란시스코 간 9000km 이상을 ‘이동’했으나, ‘걸은 거리’는 약 1.5km에 불과했습니다.

이는 문명의 혜택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의 한 단면입니다. 승용차로 출퇴근하고 사무실에서 일하는 직장인들은 하루 약 3500보, 가정주부들은 2500보 밖에 걷지 않는다고 합니다.

건강을 고려하면 이 정도로는 많이 부족합니다. 하루 0~4999보는 ‘앉아 있는 것과 별 차이가 없고’, 5000~7499보는 낮은 활동, 7500~9999보는 약한 활동으로 보며, 1만~1만2500보는 돼야 활동적이라고 보는 미국의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하루 2000~3000보도 걷기 힘든데, 만보를 걸으라고 하는 건 불가능한 목표나 마찬가지”라고 항변하시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바쁜 현대인들의 사정을 모르는 바 아닙니다. 하지만 걷는 양이 지금처럼 적은 상태가 지속되면 그로 인한 폐해는 지속적으로 커질 것으로 우려됩니다.

최근 발표된 2018년 지역사회건강조사 결과에 따르면, 걷기 실천율은 2008년 50.6%에서 2018년 42.9%로 낮아졌습니다. 반면, 비만율은 같은 기간에 21.6%에서 31.8%로 10.2% 포인트나 증가했습니다.

비만 원인이 걷기 부족 한 가지 때문만은 아니지만, 한국인의 생활습관이 움직임(걷기)부족→비만 증가→만성질환 증가→걷기 부족이라는 악순환을 겪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해야 할 상황임은 분명합니다.

저는 대학병원에서 근무할 때는 하루 4000~6000보를 걸었습니다만, 요즘은 하루 1만~1만5000보를 걷습니다. 1만보 이상 걸으려면 출퇴근 시간만 활용해서는 안되고, 새벽이나 저녁 등에 따로 시간을 내야 합니다.

삶이 곧 걷기였던 시절과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이제는 걷기를 위해 별도의 시간을 내서 노력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지난주에 한 번에 2분 이상 걸으면 건강 증진 효과가 있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2분만 걸으시라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짧더라도 여러 번 나눠서 걸으시면 걷지 않는 것보다 낫다는 의미일 뿐입니다.

스마트폰 앱에 하루 걷기 목표가 6000보로 설정돼 있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평균에 가까운 수치일 뿐 건강 증진 효과를 얻기에는 부족합니다.

건강 증진을 위해서는 하루 1만보는 걸어야 합니다. 특히 비만, 고혈압, 당뇨병 등 만성질환을 가진 분들은 ‘만보 걷기’를 꼭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예전에는 직장이나 학교에 가기 위해 걸었다면, 이제는 ‘걷기 위해 걸어야 하는 시대’입니다. ‘작심만보(作心萬步)’가 절실합니다.